가을 들판에 “농민 한숨 소리만…”/「냉해」 예상보다 심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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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익지않은 벼 곧 무서리 내릴텐데”/고추·참깨·감귤도 파동우려/“이러다간 빚이 문제가 아니라 땟거리 걱정할판”
『냉해라는게 이렇게 무서운 줄 정말 몰랐심더….』
낱알이 들지 않은 쭉정이 벼가 허옇게 말라죽은 빛바랜 들판.
어떤 곳은 고개숙인 누런 벼이삭 대신 이제 갓팬 푸른 벼이삭들이 꼿꼿이 서있고,손질을 포기한 논에는 피와 잡초까지 무성해 차라리 검푸른 색깔에 가깝다.<관계기사 20면>
『이런 흉년은 내 평생 처음이라카이. 아무리 흉년이라캐도 밥걱정은 안했는데 올해는 땟거리를 걱정할 판이니….』
벼논 5천평을 짓고 있는 경북 영일군 최호씨(53)는 황금물결로 일렁거려야할 가을들판이 냉해로 벼가 익지않고 새파랗게 남아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땅이 꺼질듯 한숨만 내쉰다.
예년 같으면 벼 1천5백여가마를 수확했으나 올해는 2백가마니 나올지 모르겠다는 최씨는 『영농자금 등 빚 갚을 방법이 막연하다』고 하소연이다.
농림수산부는 『냉해로 올해 쌀수확량이 지난해보다 10%가량(4백20만섬)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히고 있으나 조생종벼를 심은 일부 지역의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경북 최대 곡창의 하나인 영일군 흥해읍의 경우 전체 벼논 2천2백정보 가운데 태풍 「로빈」으로 물에 잠기거나 냉해가 특히 심한 4백정보에는 아예 낱알조차 들어있지 않은 쭉정이만 서 있다.
또 『아직 익지않은 벼들은 열흘쯤뒤 무서리가 내리면 더 이상 수확이 불가능하다』는게 농민들의 얘기다.
경북 월성군 안강들과 경주들은 전체 1만2천4백50정보 가운데 80%인 9천9백60정보가 냉해를 입어 수확량이 지난해의 절반에 그칠 것으로 조사됐다.
고추 등 밭작물은 벼보다 냉해가 더욱 심각해 김장철 값이 뛰는 등 고추값파동이 우려되고 있다.
영남 최대의 고추 주산지인 창녕군일대 고추재배농들은 예년같으면 온통 빨갛게 익은 끝물 고추를 따느라 일손을 바쁠텐데도 올해는 탄저병 등으로 고추가 열리지 않아 일손을 놀리고 있고,외지인이 몰려드는 고추시장마저 한산한 모습이다.
창녕군일대의 고추생산량은 지난해 1천3백55t에 이르렀으나 올해는 20∼30% 줄어들 전망이다. 고추값은 상품기준 6백g 한근에 지역에 따라 6천∼7천원에 거래돼 이미 지난해 이맘때(4천원선)보다 50∼75%가량 올랐다. 참깨 역시 잦은 비와 이상저온 현상으로 씨가 여물지 않고 빈껍데기만 남아 최대흉작이 예상되고 있다.
올해 1천5백정보에 참깨를 심은 참깨 주산지 전남 무안군의 경우 예년같으면 3백평당 75㎏ 정도를 수확했었으나 올해는 수확량이 그 절반정도인 35∼40㎏에 머물렀다.
제주도의 감귤생산량도 지난해 70만t에서 올해는 61만t정도로 10%이상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따라 밭떼기로 거래되는 감귤값이 지난해 3.75㎏ 한관에 2천원 정도 거래되던 것이 올해는 20∼30% 정도 오를 전망이다.
한편 농림수산부는 『냉해로 인해 벼의 생육이 늦어져 벼베기가 예년보다 2∼9일 늦어지고 있다』며 『이달 중순 정확한 생산량이 집계되면 피해농가에 대한 지원방안과 추곡수매 가격 등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영일·창녕·무안·제주=김형환·김상진·홍권삼·천창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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