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벌기인가 내부문제인가/북한 핵관련 잇단 돌출 행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대화미끼로 한미양보 더 받을 속셈/군부입김 커지고 강경파 득세설도
북한이 핵문제와 관련,돌출적인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사찰 협상을 공전시킨데 이어 21일 핵전쟁 연습과 공조체제의 조건을 달아 남북대화를 또 연기하고 나섰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미국과의 3차회담을 위해 IAEA협상 및 남북대화에 성의를 보일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을 뒤엎는 일이다.
IAEA협상 및 남북대화의 진전이 북한­미 3차회담의 조건임은 북한­미 제네바회담 외에도 그동안 여러경로를 통해 북측에 전달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은 최근 핵문제를 유엔안보리에 회부할 경우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유보 조치로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미국측에 통보했다.
NPT탈퇴후 미국과의 회담에 온힘을 쏟아온 북측의 정책기조에 비춰볼때 최근 일련의 움직임은 납득이 가지않는 구석이 많다.
북한이 미국과의 3차회담을 열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어긋나는 행보를 하는데 대한 시각은 분분하다.
정부의 분석이나 전문가들도 크게 ▲북한의 치밀한 대화전략 ▲북한 내부문제의 양축으로 나눠져 있다.
북한의 치밀한 대화전략으로 보는 시각은 첫째로 북한이 한미 두나라에 더 큰 양보를 얻어내려는 속셈을 말하고 있다.
북한은 핵해결 수순을 가능한한 늦춰 미국의 입지을 좁힘으로써 ▲팀스피리트훈련중지 ▲핵선제 불사용 보장 등을 받아낼 계산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에 아무런 지렛대가 없는 상태의 지속은 국제여론 등으로 볼때 미국의 부담이 될 것임을 북한이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핵전쟁연습에 대한 태도표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팀스피리트 훈련중지를 겨냥했다는 시각이다.
말하자면 IAEA및 한미 양국에 대한 최근의 북한 태도는 핵카드의 효용성을 최대한 살리기위한 계산이지 돌출적 행동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장기전략을 뒷받침하는 두번째 논리는 북한의 한미간 및 미­IAEA관계를 이간시키려는 속셈을 주목한다.
북한은 당초 미국과의 2차회담에서 남북대화 및 IAEA와의 사찰협상 재개에 합의했었다.
그러나 북한은 북한­미 3차회담을 앞두고 이 두 대화를 공전시킴으로써 한미간은 물론 미­IAEA와의 공조체제에 금가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최근 돌출행동을 장기전략으로 보는 세번째 시각은 핵개발을 위한 시간벌기와 관련시키고 있다.
치밀한 협상전술로 핵해결을 마냥 늦추는 것은 NPT탈퇴 당시 강하게 제기됐던 핵개발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핵문제가 해결되고나면 노동1호 미사일과 인권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올 것이라는 북측의 우려도 한몫 하고 있다고 본다.
이같은 장기전략보다는 북한 권부내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돌출행동을 파악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정부내의 한 통일관계자는 핵문제 해결을 눈앞에 두고 나온 최근의 돌출행동은 강경파의 득세를 연계시키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북한이 과거 다반사로 일어났던 우리 어선의 해상경계선 침범을 「간첩선 사건」이라고 들고 나온데는 군부의 입김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핵전쟁 연습에 대한 입장표명 요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야 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또 북한 내부에 긴장을 조성해야할 모종의 이유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7월 전승 40주년 행사까지 계속 긴장분위기를 조성해온 만큼 이를 단숨에 화해국면으로 끌고가는데는 내부 합의도출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간첩선 사건」과 관련,고위급회담 대표단 성명에 이어 조평통·직총·농근맹 등의 성명이 쏟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긴장조성은 권력승계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는 7차 당대회가 공고되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오영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