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없이 경제체질 개선/일 부양책 어떤 내용 담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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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공공투자 늘려 무역흑자 줄이기도 겨냥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본 신정부가 16일 내놓은 긴급경제대책은 두가지 병증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는 좀처럼 바닥권을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는 장기적인 경기침체이며 다른 하나는 국제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과다한 무역수지흑자다.
호소카와 정권은 이 2가지 병증을 치유하기 위한 처방으로,공공사업 등에 6조2천2백억원(약 48조원) 규모의 재정투융자와 각종 행정규제의 완화를 택했다. 이는 금리인하와 감세에 의해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추기던 과거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지금까지 일본정부가 주로 써왔던 경기부양책은 세금감면을 통해 소비를 부추기고 이를 내수확대로 연결시켜 기업의 숨통을 터주는 것과 금리인하를 통해 기업의 직·간접 금융조달 비용을 감축시켜 투자의욕을 부추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에 비해 이번에 호소카와 정권이 선택한 방책은 금리인하는 고려하되 감세는 하지 않으며 그 대신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발목을 잡는 비효율적인 각종 행정규제를 과감히 없앰으로써 경제체질을 개선하자는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호소카와 정권이 단기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종래의 경제대책을 버리고 행정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춘 처방을 내린 것은 과거 자민당 정권하에서 굳어진 정­관­계의 이른바 「철의 삼각형」이 「만병의 근원」이란 판단 때문이다.
행정관청은 경제질서를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규제를 통해 기업을 묶어놓았으며 기업은 정치의 힘을 빌려 이를 해결해 왔다.
이 과정에서 기업과 정치인의 「음성적인 거래」가 빈번히 이루어졌으며 기득권을 차지한 기업들이 담합을 통해 일본의 경제체질을 「비경제체질」로 만들어 놓았다. 물론 일본경제의 성장기에는 정­관­계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가속도를 상승시킨 측면도 있었지만 요즘같은 국제화시대엔 과거의 관행이 일본의 바람직한 성장을 저해하고 오히려 국제사회의 비난의 표적이 된다는게 호소카와정권의 인식이다.
실제로 미국 등은 표면적으로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된 일본 시장이 사실은 각종 규제를 동원해 두꺼운 무역장벽을 두르고 있으며 이것이 무역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번 경제대책의 또 하나의 목적은 『나라는 잘 살지만 국민은 가난하다』는 불명예를 불식시킨데 있다. 즉 호소카와총리가 늘상 주장해온 「생활대국」과 경제대책을 연결시키려는 의도다. 경기부양을 위한 공공사업 투자액 6조2천2백억엔의 내용을 보면 이같은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우선 경제력에 비해 월등히 떨어지는 주택수준을 개선하기 위해 주택자금 융자규모를 2조5천억엔 늘리기로 했다. 전체 경기부양 규모의 3분의 1이 넘는 액수다.
다음엔 고령자와 장애자를 위한 공공시설 정비,연금복지 사업비,공공용지 취득 등에 1조2천억엔을 책정해 놓았다.
이는 지금까지 경제활성화에 중점을 둔 정부의 관점에서 이뤄진 인프라 투자에서 「소비자 중심의」 인프라 투자로 전환된 것이다.<김국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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