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여자의4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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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3.가을 다음 해 구월(2) 세의 학교로 가는 길목엔 벌써 가을이 와 있다.도로 양편에 줄 서 있는 플라타너스 위로 일렁이는 바람도 여름을 다 털어냈는지 서늘하고 청명해 보인다.
가을이구나,생각되자 금방 은서의 머리 속에 이슬어지가 떠오른다.이수는 어떤지,이슬어지의 이수를 생각하자,차창 밖의 청명함에 먹물이 섞여든다.
엊그제 전화에서 이수는 이젠 밤나무에서 밤이 떨어져도 주울 사람이 없는데 밤나무는 막 송이가 벌어지는 햇밤이 토실하다고 했었다.햇볕나는 날보다 비오는 날이 더 많았던 여름 탓에 벼이삭이 패지 않아 가을 앞에서도 사람들은 다 시무룩 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수는 말했었다.누난 이제 괜찮지? 이수의 누난 이제 괜찮지?하는 질문에 잠시 은서는 괜찮지가 않아 마음이 흐려졌었다.그 한 마디에 끌려나오는 지나간 일들 하나하나가 한꺼번에 검은 휘장처럼 밀려왔다.
은서가 뭐라고 대답을 못하고 있자,이수는 혼자 당황해서 누나…누나…두어번 부르고선 웃었다.은서가 결혼을 하기 전이면 분명이수는 누나 한번 와,했을 것이다.하지만 이수는 그냥 누나…누나…두어번 부르곤 웃는 것으로 그 말을 참아주었 다.하지만 은서는 이수의 그런 마음이 쓸쓸했다.그래서 전화의 끄트머리에 이수야 내가 한번 갈게,했었다.아니야,누나 내가 올라갈 일이 있어.내가 갈게.서울서 결혼식이 있거든.무슨 결혼식? 뭐라고 곧대답하려던 이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누가 결혼하는데? 은서가재차 묻자 이수는 응,누나 기억하나? 남수라고…남수?은서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듯 말꼬리를 올리자,이수는 왜 완 형네 사촌…내 친구이기도 하고…작년에 왜 집 그대로 비워두고 서울로 이사갔잖아…생각 안 나? 은서는 세가 근무하는 학교 교문 앞에 차를 주차시켰다.
생각이 났었다.이수가 말한 남수가 아니라 완이.너무나 오랜만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어보는 이름,떠오르려고 떠오르려고 할때마다 가라앉혀 두었던 이름,은서는 이수가 그때 내가 가서 전화할게…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은 후에도 그대로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세가 다가와 왜 그러냐면서 손에서 수화기를 받아 내려놓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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