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만항의 시달린 종로구의회/최영규 사회 2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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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 종로구의회는 1일이 고달픈 하루였다.
「서울 구기·평창동일대 풍치지구에 대한 구청측의 건축규제 강화 조례안이 구의회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보도(중앙일보 1일자 사회면 머리기사)가 있은 후 수많은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치듯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 토지주들의 재산권보호가 1천만 시민의 녹지공간을 박탈할 수 있을 만큼 절박하고 중차대한 문제냐』는 것이 주류였다. 『구기동과 평창동을 지나 북한산을 오를 때마다 느끼는 분노는 비단 나 혼자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산림이 울창하고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호화빌라와 거대한 주택들이 어떻게 버티고 서 있는지,도대체 구의회가 이렇게 반시민적 행동을 해도 되는 겁니까.』
30대 회사원이라고 자신을 밝힌 이 남자는 20여분동안 구의회와 시·종로구를 폭언까지 섞어가며 나무랐다.
또 몇년전까지 종로구 도시정비과에 근무했다는 한 60대 남자는 구의회를 나무라기 이전에 구행정과 구행정에 대한 외부압력에 분노를 터뜨렸다.
『이 일대 호화빌라가 대부분 지하실·창고를 불법 용도변경해 거주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벌과금 징수는 물론 단속조차 한 적이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단속때마다 외부압력 때문에 아예 단속대상에서 제외했었다는 것이다.
『구의회 결정직후 종로구가 8일까지로 돼있는 재의요구기간과 관계없이 이를 포기한 것도 단순한 주민들의 반발이나 땅주인들의 재산권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외부압력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러나 종로구의회 한 의원은 본사에 전화를 걸어 『구민들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구의회가 「현명한」 결정을 했는데 왜 부정적으로 보도하느냐』고 화를 내다 『평창·구기동에 땅을 몇평이나 가지고 있느냐』고 묻지 서둘러 수화기를 내렸다.
전화들중에는 『내집마련의 꿈을 위해 조합주택에 가입한 뒤 빚을 내 대지구입비용으로 냈다가 건축규제 강화로 피해를 봤다』는 샐러리맨들의 「절규」도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중 일부는 『경관보존을 위해서라면 이곳에 내집마련을 위한 꿈을 유보할 수도 있다』는 성숙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해 구의회의 결정이 얼마나 시민들의 정서에서 벗어난 것인가를 입증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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