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여자의4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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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여름 새 두 마리(23) 화연은 엘리베이터 앞에까지 와서야 신호등 아래 비닐봉지를 두고 왔다는걸 안 모양이다.은서의 어깨에 가방이 매어져 있지 않다는 것도 안 모양이다.
『여기 잠깐만 있어요.』 화연이 엘리베이터 옆 벽에 등을 기대게 해주고 몸을 돌리려고 하자 은서가 그녀의 손을 잡아 끈다. 『어디 가요?』 화연은 잠시 은서를 건너다 보더니 다정하게웃는다. 『어디 가는거 아녜요.신호등 아래 은서씨 가방이랑 내가 방금 산 감자가 든 봉지를 놓고 온 것 같아서 찾아 오려구요.금방 올게요.내건 그렇다치고 은서씨 가방 누가 들고 가면 어떻게 해? 여기 가만 있어요.아니면 먼저 올라가 있을래 요?』 아니,은서는 고갤 젓는다.화연은 은서의 몸을 더 편하게 기대게 해놓고 온 길로 다시 뛰어간다.뛰어가는 화연의 뒷모습을 보다가 은서는 저절로 몸이 벽을 타고 미끄러져 무릎을 괴고 앉게 된다.
은서는 그렇게 앉아 화연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다.윗입술과아랫입술이 달달 떨리며 이가 부딪쳐 오는 오한을 참으며 은서는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안 감으려고 애쓰며 화연을 기다렸다.왜 이렇게 추울까,화연을 기다리다 은서가 마지막으 로 한 생각은 왜 이렇게 추울까,라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였을까? 어쩌면 산과 산이 연결된 케이블카였는지도,무엇이었든 그것은 위로 오르다가는 갑자기 우뚝 멎어버렸다.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은서 자신 혼자였다.그녀는 자신이 왜 거기 혼자 있는지 의아했다.
잠깐 문이 열리는 것같아 얼굴을 내밀었더니 문은 그녀가 얼굴을 다시 빼내기도 전에 세차게 닫혀 버렸다.얼굴은 문 틈에 끼여 부서졌다.사방은 어두웠었고,엘리베이터였는지 케이블카였는지 그것은 공중에 멈춰 있었다.
유리문인지 알루미늄 문인지,열리지 않는 문틈에 끼인 얼굴을 빼내보려 할수록 얼굴은 일그러지고 으깨졌다.그 고통을 누군가 저만큼 서서 보고 있었다.그는 웃고 있었다.은서는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로 봐 두려고 눈을 감지 않았다.은 서의 으깨지는 얼굴을 보고 있는 얼굴은 웃고 있을 뿐 눈도 코도 뺨도 없다.그저 입이 웃고 있다.나는 바스러지는데 당신은 웃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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