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끝내 떠넘긴 KAL기 격추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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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한항공(KAL)007機 격추사건 10주년을 이틀 앞둔 30일 러시아정부가 사건 진상조사를 공식적으로 마무리짓는 뜻으로 가진 기자회견은 국제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건이 발생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사건의 원인에 대해 아직도설이 분분하고 사고 원인은 차치하더라도 유족들에 대한 배상문제에 대한 국제적 책임소재도 아직 불분명한 상황에서 러시아측이 그들의 최종적인 사건조사 결론을 발표하는 것이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이날 기자회견이 열린 러시아 외무부 프레스센터엔 모스크바에 주재하고 있는 주요국가의 언론들이 대거 참여,관심을 표명했다. 또 사건의 국제적인 비중에 걸맞게 러시아측에서도 사고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이며 보리스 옐친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세르게이 필라토프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 사고의 원인에 대한 그들의 결론을 1시간30분씩이나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때의 결론은 10년전 이 자리에서 있었던기자회견의 결론과 별다른 것이 없었다.
배경설명과 논리적인 추론의 근거에 대한 해석자료가 조금 보강된 것을 제외하면 결론은 사고기의 격추에 대한 舊蘇聯의 법적 책임은 없으며 이번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대한항공 조종사 및 승무원들의 「한번이 아닌 계속적인 위반행동」이라는 것으로 10년전의 설명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외교적이고 논리적인 상황설명만 제외한다면 그때의 결론보다 더 강경한 어조로 소련의 잘못은 없으며 잘못은 대한항공기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결론은 교묘하게 소련의 잘못을 회피한채 모든 책임을 대한항공에 뒤집어 씌우려는 시도다.
러시아측이 내린 결론은 전쟁상태도 아닌 평시에 민간항공기에 대해 미사일을 발사, 승객을 몰사시킨 격추행위에 대한 책임은 사소한 것이며 영공을 침범한 대한항공의 책임은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10년전 사건 발생 직후 세계의 여론과 언론이 주장하고 舊 소련을 비난했던 논리의 핵심이 아무리 냉전시기라고 하지만 어떻게 민항기를 전투기가 간단하게 미사일로 격추시킬 수 있었는가에모여졌었다는 것을 러시아는 정말 잊어버린 것인가 .
10년을 끌어온 사건조사 결론치고는 너무나도 厚顔無恥한 주장이며 책임회피로 일관했던 舊소련 발표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이것이 최근 韓.러시아간의 냉랭한 관계가 표출된 것인지는 몰라도 유족들에겐 실망을 넘어서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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