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고서 반환(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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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사이래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모든 전쟁들의 뒷면에는 승전국의 패전국에 대한 문화재 약탈로 점철돼 있다. 문화재 약탈이 전쟁의 목적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 규모가 크게로는 장군멍군식으로 서로 상대국의 문화재를 빼앗아간 독일과 러시아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2차대전이 치열했던 1941년 독일군이 페테르부르크를 점령해 20여만점의 문화재를 독일로 반출해간데 뒤이어 대전 막바지 승전한 소련군은 베를린의 박물관·미술관에서 5백만권의 고서적을 비롯해 수만점의 예술품을 빼앗아간 것이다.
최근 이들 양국은 2차대전중 서로 빼앗아간 문화재들을 맞교환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거니와 아이로니컬한 것은 서로 빼앗아간 문화재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보다 훨씬 전에 제3국으로부터 약탈해간 것이거나 부당하게 반출해간 문화재라는 점이다. 당시 독일로부터 빼앗아 러시아가 보관중인 그리스의 옛도시 트로이의 보물 8천여점도 19세기말 독일인에 의해 발굴돼 독일이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명의 발상지임을 자랑했던 그리스·이집트 등이 문화재를 가장 많이 빼앗긴 나라들이고 가장 많이 빼앗은 나라는 한때 강대국임을 자랑했던 영국·프랑스·독일 등이 으뜸이다.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멜리나 메르쿠리가 그리스 문화부장관은 맡고 있던 80년대초 영국을 방문해 「엘진마블」로 블리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 등 그리스의 중요한 문화재 반환 운동을 벌인 것도 이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다.
외세의 작은 침략을 받았던 우리나라도 당연히 많은 문화재들을 빼앗긴 나라로 꼽힌다. 유네스코가 이미 오래전부터 강대국들에 의해 약탈된 문화재들의 반환운동을 펴왔고 우리나라도 해외유출 문화재환수를 위해 노력해 왔으나 일본 등 당사국들의 반응은 도무지 시원치 않다. 경부고속철도가 프랑스의 TGV로 결정되어 한­프랑스간의 우호협력관계가 무르익어감에 따라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강화도의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빼앗아간 3백여점의 귀중한 문헌들이 되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TGV가 개입된 것이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라도 되찾을 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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