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자율(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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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때는 사립대학의 등록금이 똑같았다. 명문 사립이든,신생 대학이든 가릴 것 없이 당시 문교부가 금년 등록금 인상폭은 얼마다 하고 정해놓으면 모든 대학이 그렇게 따라야했다. 이렇게 하다보니 대학의 자율이란게 뭐냐고 따지는 대학이 나오고 실상 대학재정에 아무런 도움을 못주는 정부가 등록금 액수까지 정하는게 웃기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온게 대학 등록금 자율화 결정이었다. 각 대학이 형편에 따라 등록금 액수를 정하게 되었다.
등록금 책정이 대학자율에 맡겨지자마자 까마귀 날짜 배떨어지듯 대학마다 등록금 동결투쟁이 운동원 학생들의 전술전략 목표가 되어버렸다. 등록금을 인상해야할 어려운 재정 형편이지만 학생들 눈치보느나 단 한푼 올리기도 힘들게 되었다. 이러니 등록금 자율화 방침을 반납하자는 소리가 대학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새 대입제도가 도입되면서 학생 선발권이 상당부분 대학 자율에 맡겨졌다. 본고사를 치르느냐,마느냐도 대학에 맡겨졌고 시험일자 택일도 대학 결정에 넘겨지는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1백30여 대학들은 자신들에 맡겨진 자율권을 여러 이유를 들어 포기했다. 교육부가 대학 본고사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라는 타율적 이유를 들어 불과 9개대학만 남겨 놓고서는 모두 대학 본고사를 포기했다. 출제에 드는 경비도 따져보았을 것이고 출제능력상의 문제점도 포기의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가장 존중되어야 할 대학의 자율권이 막상 부여되면 대부분 대학은 스스로 자율권을 포기하거나 발로 차버렸다. 비슷한 현상이 또 나타났다. 서울대가 본고사 일자를 1월16,17일로 발표하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가 같은 날짜에 본고사를 보거나 면접을 보겠다고 나섰다. 이러니 복수지원이 라는 제도적 장점이 사라져버렸다. 허수지원으로 생겨나는 행정상의 문제를 들고 있지만 서로가 2류냐,3류냐는 눈치보기 경쟁탓이다.
어느 사회,어느집단에서나 자율이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자율을 획득하기 위한 희생과 끈질긴 노력이 있어야만 그 자율이란 값진 법이다.
그러나 사회의 양심이어야할 대학의 자율이란게 이 형편이라면 우리 사회의 자율이란 정말 요원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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