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과 유언비어(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만약 미국 해병대가 어느날 새벽 백악관·의회·방송국 등을 점거하고 『은인자중하던 군부가 드디어 일어섰습니다. 미국의 경제난과 국력쇠퇴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군부가 정권을 인수,참신하고 양심적 정치를 펴기로 했습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백명이면 백명 모두가 「픽」 웃을 것이다. 미국엔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백악관을 점령해도 국민들이 『장난이 심하군』하고 픽 웃는 분위기면 쿠데타는 일어날 수 없다. 모두 겁을 내고 한자리 하겠다고 우르르 몰려들어야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다.
미국엔 쿠데타가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은 결코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니다. 건국이래 쿠데타가 한번도 없었고 군부에 대한 민간통제가 흔들릴 수 없는 전통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상식으로 보아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안 일어나기 때문에 상식을 맏는 것이다. 그런 믿음의 분위기는 나라의 큰 자산이고 선진사회의 징표이기도 하다. 쿠데타의 예가 심하다면 화폐개혁은 어떨까. 달러화를 바꾼다는 소문이 돌아도 그걸 입에 올리는 사람만 바보취급을 받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엔 화폐개혁 소문이 무성하다 .그러나 누구하나 픽 웃는 사람이 없다. 상식적으로 보면 지금 이 시기에 화폐개혁을 할 수 없다. 물리적인 준비도 그렇고 그 실효면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나 화폐개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들을 많은 국민들이 하고 있다. 이제까지 상식과는 동떨어진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61년 통화개혁,72년 사채동결이 대표적이고 이번 실명화 전격실시도 완전히 상식의 허를 찔린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아무리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라도 삽시간에 요원의 불길이 될수 있는 가연성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극히 언행에 조심해야 한다. 생각지도 않게 불씨를 던져 대참사를 빚을 수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연성 사회이기 때문에 화폐개혁설로 증시에 돈이 몰려 실명화 주가가 되살아 나고,동아투금 제재발언으로 뇌취사태가 벌어져 애써 처벌법규를 찾을 필요도 없이 동아투금이 저절로 거덜나게 됐다고 좋아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