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조 열풍 아직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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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가 열리고 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마라톤 종목이 끝났는데도 황영조 (23·코오롱) 열풍이 거세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영웅 황영조는 이번 대회에 불참, 국내에 남아 있지만 그를 찾는 세계 팬들의 관심은 드높기만 하다.
한국 선수단이 머무르고 있는 슈투트가르트 교외의 선수촌 아파트엔 매일 황에게 배달되는 편지·엽서가 10여 통을 헤아리며 전화도 심심찮게 걸려온다.
편지는 대개 독일 팬들에게서 온 것이지만 일부는 호주·미국·노르웨이 등지에서 온 것도 많다.
내용은 대부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의 인상적 레이스 장면을 회상하는 것과 현재 한국에서의 근황을 묻는 것.
일부 어린이 팬들이 사인을 해달라며 용지를 첨부한 것들도 많다.
또 시내 식당가나 경기장 부근에서 만난 시민들은 으레 『황영조』를 부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지난 연말 스웨덴에서 열린 국제육상연맹 (IAAF) 주관 행사에서는 황영조에게 걸려온 전화가 하도 많아 대한 육상 연맹 국제 본부장이 통역을 위해 황과 방을 같이 썼을 정도였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끝난지 얼마 안되긴 했으나 황은 적어도 유럽에선 한국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1등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동양인 하면 으레 일본인을 떠올리곤 하던 유럽인들로부터 『아시아엔 황영조의 한국이라는 나라도 있다』는 인식 전환의 징표를 수시로 확인하면서 조금은 뿌듯한 마음도 든다.
물론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제대로 이름 값을 인정받기는 서울 올림픽이라는 인류 제전이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한 스포츠 스타가 조국의 명예를 빚낼 수 있다는데 스포츠 역할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이번 대회에서는 단일 경기 종목 사상 처음 조직위에서 김치를 선수촌 공식 메뉴로 채택, 싱싱하고 맛있는 김치를 매일 공급하고 있다.
이는 대한 육상 연맹의 요청이 아닌 조직위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것.
이 역시 황영조의 「위치」 때문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어느 외교관이나 체육계 고위 관리가 부탁해서 될 일도 아님이 분명한 것 같다. 【슈투트가르트=신동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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