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협상 성공 여부, 몇차례 추가 만남 뒤에야 가늠할 수 있을 듯

중앙일보

입력

10일 오랜 협상 끝에 힘겹게 성사된 한국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반군 간의 직접 협상이 3주 넘게 억류돼 있는 한국인 인질 21명의 석방 협상에 돌파구를 열 수 있을까?

이제 겨우 단 한 번, 그것도 탐색전 성격의 만남이 이뤄졌을뿐인 단계에서 협상의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 한국 정부도 협상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며 성급한 기대에 대한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협상의 가장 큰 난제는 잘 알려진 것처럼 탈레반이 요구하고 있는 탈레반 수감자들의 석방 성사 여부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국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기대하는 것은 이미 이 같은 한국 정부의 입장은 탈레반 측에 충분히 전달됐으며 이를 탈레반이 받아들여 요구 조건을 변경하게 만드는 것. 그러나 피랍 24일이 되도록 수감자 석방만이 인질 석방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탈레반이 이제까지의 요구를 쉽게 바꿀 것이라고 보기는 현재로서는 어려운 형편이다.

다만 그동안 진행돼온 아프간 정부를 중재자로 내세운 협상 방식으로는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는 점을 한국이나 탈레반 모두 절감하고 있고 이런 바탕 위에서 직접협상이 성사됐다는 점이 진전과 타결을 향한 기대를 갖게 하는 유일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탈레반은 여전히 협상이 실패할 경우 인질을 살해한다는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두번째 인질을 살해한 후 거듭되는 살해 위협에도 불구하고 2주 가깝게 추가 살해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탈레반 역시 인질 추가 살해에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16명이라는 많은 여성 인질이 붙잡혀 있는 것이 이슬람 전통에 어긋난다는 비난과 이슬람권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인질 석방 촉구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 탈레반으로 하여금 섣불리 추가 살해에 나서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탈레반이 한국과의 직접 협상에 나선 것은 탈레반 수감자 석방 문제는 한국 정부의 권한 밖이라는 그동안의 한국 정부 의사를 최종 확인하기 위한 절차라고 볼 수 있다.

탈레반으로서는 3주 이상 고집해온 수감자 석방 요구를 단 한번의 만남만으로 철회하기 힘들 것이다. 때문에 적어도 3∼4 차례 정도는 한국에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며 직접 협상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탈레반이 수감자 석방은 한국 정부의 권한 밖의 문제라는 한국 측 입장이 최종적이라는 점을 확인한 뒤 어떻게 나올 것이지가 사태 해결의 고비가 될 것이다.

요구 조건을 좀더 현실적인 것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결정을 했다면 그 이후부터 이어지는 협상에서 좀더 빠른 속도로 진전을 이뤄나갈 가능성이 있다. 우리 정부는 이 달 내 구호요원 철수를 이미 통보했고 아프간에 대한 경제 지원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탈레반 설득에 나서고 있다. 탈레반 쪽에서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인질 석방에 대한 몸값 지불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 제시한 다양한 대안 가운데 탈레반측이 최대한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조합을 선택한다면 인질 석방의 물꼬가 트일 것이다.

탈레반이 요구 조건을 변경할 경우 그 동안의 요구를 철회할 수 있는 명분을 한국 정부가 제공할 것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수감자 석방만큼의 이득을 탈레반이 얻었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내용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으로서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이를 끌어내릴 수 있느냐 여부가 협상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수감자 석방 요구가 절대불변의 조건이라는 입장을 고집할 경우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다. 이럴 경우 직접협상 개최는 탈레반이 끝까지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다 했다는 명분쌓기를 위한 구실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양측간의 직접 협상이 성공할 것인지 여부를 점치는 것은 앞으로 몇차례 더 만남이 이뤄진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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