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빛 공약 남발하는 후보들/박영수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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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일 춘천지역 보궐선거 첫 합동연설회가 열린 부안국교 유세장은 온통 장미빛으로 물들었다.
여·야·무소속 등 5명의 후보들은 강원도의 낙후상을 주메뉴로 삼아 지역발전 공약을 다투듯 늘어놨다.
모든 후보들이 공통으로 내세운 공약만 ▲강원대 의대건립 ▲서울·경기 시민들로부터 상수도세 거뒤오기 ▲미군기지 이전 ▲그린벨트 규제완화 등 4∼5가지.
아마도 이 지역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며 집단민원사항인 모양이다.
지역의 문제점을 고치겠다고 들고나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이 정도의 공약은 그래도 봐줄만하다.
그러나 『고교평준화 제도를 부활시키겠다』 『강원도를 동양의 스위스로 발전시키겠다』 『지역개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 등에 이르면 후보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학연싸움을 부채질하겠다는 속셈이 뻔하며,국토의 균형개발이나 실현가능성은 염두에 두지도 않고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하려는 얄팍함이 엿보인다.
심지어 어떤 후보는 『이 공약이 지켜지지 않으면 당선돼도 의원직을 내놓겠다』고 했다.
뻔한 「공약」이 난무하니 유권자들의 시선이 차가울 수 밖에 없다. 『한두번 들은 공약이라야 믿지요. 선거때마다 매번 똑같은 얘기가 나오지만 어는 것 하나 실천된게 있나요.
큰것는 놔두고라도 작은것부터 해낼수 있어야 합니다.』(서대규씨·53·춘천시 교동)
『그 정도 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상임위원장 정도 돼야하지 않겠어요.
초선의원들에게 누가 그런 자리를 맡기겠습니까.
먼저 신뢰성부터 쌓아야해요.』(성기동씨·54·춘천시 후평동)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더라도 임기가 2년6개월 정도밖에 안되는데 과연 그같이 굵직한 약속들을 실천해낼 수 있겠느냐며 의아해하는 표정들이다.
환심을 사기위한 현란한 약속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후보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거창한 공약에 앞서 사소한 문제라도 성실히 실천해낼 수 있는 「작은 일꾼」을 필요로 한다는 한 유권자의 유세평이 새삼스럽다.<춘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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