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그룹 해체의 위헌결정(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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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그룹 해체조치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부와 국민경제의 핵심주체인 기업에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하나는 헌재가 결정문에서 밝힌 것처럼 비록 대통령의 권한행사라 할지라도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 절차를 거쳐 이뤄져야 하며,법치행정의 준수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개인 기업의 자유와 정부의 경영불간섭 원칙이 새삼 강조되면서 이제 양자 관계가 시장경제 원리에 맞게 정립되도록 스스로의 노력과 책임의식이 더욱 필요하게 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시장원리를 무시한 행정운영 및 기업과 정부와의 유착관계가 빚어낸 비효율적 산업지원체계가 국가경쟁력을 오히려 끌어내린 측면이 있다. 정부가 의도했건,의도하지 않았건 법적 절차에 의하지 않은 행정행위가 사유재산권을 제약하는 일이 잦았고,기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리한 자구방안을 모색하거나 정부 의존적인 경영형태에 안주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헌재는 국제그룹 경영이 부실에 빠졌다 하더라도 이의 정리를 위해 경영에 개입하고자 할때는 법률상의 규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박았다. 해당 기업의 예상되는 부도로 인해 국가경제가 중대한 위기에 몰렸을 경우라면 대통령이 긴급명령에 의해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합헌적 조치라도 강구했어야 한다는 충고를 담고 있다. 헌법에 규정된 법치주의와 자유주의적 경제체제 및 사기업 경영권 불간섭원칙을 새삼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유형·무형의 형태로 침해되어 왔다는데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는 헌재가 천명한 정부 행정의 합법성 원칙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헌재의 국제그룹 해체 위헌결정에 대해 당시 정부관계자들은 사실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84년 당시 해당 기업은 사채성격의 타입대가 무려 3천억원이나 쌓였고,방만한 경영이 부실을 재촉해 부도 직전에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주거래은행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정리방안을 마련했다는 주장이다. 헌재에서 국제 해체조치를 위헌으로 판정한 것과 당시 국제경영의 부실이나 경영자의 책임은 별개 문제다. 경영부실과 책임은 그것대로 따져야 한다.
당시 국제그룹 해체의 결정 과정과 절차 등에 문제가 있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전기업을 정치적 판단에 의해 해체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을 계기로 정부는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엄격히 구별해야 하며 무슨 일을 할 땐 반드시 법률적 근거를 갖고 해야 한다는 것을 투철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 민간부문도 정부의 간여가 엄격히 제한되는 대신 정부로부터의 지원이나 혜택을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제 실명겸전한 자율과 책임의 시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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