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의 아픔」 표현 미흡|S-TV 『사랑과 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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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5일부터 방송되고 있는 SBS-TV 미니시리즈 『사랑과 우정』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적잖은 관심을 모았다. 노동 운동가 출신 안재성의 소설 『환희의 나날』이 원작으로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통해 암울했던 80년대 진실을 드러내 줄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과연「가장 제도권적 매체」인 TV가 시대적 진실을 얼마나 드러내고, 시대적 아픔을 얼마나 껴안을 수 있을 것인가. 16부작 중 6부가 방송된 현시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또 하나의 사랑 이야기에 머무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시대적 진실은 사랑 얘기의 뒷 배경 정도로 이용당하고 있다.
당초의 기획 의도가 젊은 남녀간의 사랑만을 다루는 것이었다면 「운동권 이야기」까지 이용해 먹는 민영 TV의 철저한 상업주의를 확인하고 이를 경계하는 정도면 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운동 상업주의로 매도할 수는 없다. 사랑 얘기를 통해 시대의 아픔에 접근하고자하는 의도가 곳곳에서 엿보인다.
『사랑과 우정」엔 적어도 6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연약하고 조용한 부잣집 딸 예원, 그녀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단짝 지혜, 그림을 잘 그리는 고아 출신 순구, 이들의 동향 친구로 현실주의자인 경석, 시인 지망생 명진, 그리고 예원의 대학 선배이자 운동권 투사인 호영.
어린 시절은 예원에 대한 순구의 애증 병존으로 인한 갈등을 축으로 얽히고, 대학진학 이후는 호영에 대한 예원의 존경·사랑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심이 된다.
이 드라마는 TV드라마에선 흔히 쓰이지 않는 극적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잦은 회상 장면과 내레이션 (극중 해설)이 그것이다.
정작 문제는 중간중간 끼어드는 내레이션이다. 내레이션은 제시되는 사실을 확인, 의미를 부여하고 극 전개를 매끄럽게 하는 기능을 한다. 여기서 예원의 단짝 친구인 지혜가 내레이션을 맡은 것이 결정적 흠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자 주인공 순구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방황하게 되면서 동아리에서 멀어진다. 그 때문에 순구의 방황 장면에는 내레이션이 없다. 여자 주인공에 대해서만 내레이션이 나오고 남자 주인공 장면엔 내레이션이 없는 기형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또 내레이터 (지혜)의 목소리는 내레이션의 무게를 전달하기엔 너무 가볍고 튄다.
첫회 초반부에서 혼란스러울 정도로 컷의 부딪침을 보여준 것이라든지, 대사에 의한 설명보다 함축적 영상 표현과 빠른 장면 전환을 시도하는 등 제작진의 의욕은 높이살만하나 사랑과 운동, 또는 개인적 삶과 역사적 삶을 결합하려는 「높은 뜻」은 드라마 구조상의 기본적 결함에다 TV매체의 현실적 제약까지 겹쳐 아쉽게도 실패로 기록될 것 같다. <곽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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