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핵 학자 "생계보장" 잇단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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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러시아에서는 지금 냉전체제 붕괴와 경제개혁 부진으로 정부의 첨단 방위산업 지원이 삭감됨에 따라 엘리트 과학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냉전체제에서는 정부로부터 특별대우까지 받았던 이들은 지금 월급도 제때 받지 못해 생계 위협까지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는 물론이고 유명대학의 분위기도 극히 침체되어 있으며 과학자들의 시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첼리아빈스키-70으로 알려진 우랄산맥 근처의 핵 연구소에서는 최근 이 연구소 과학자 수천 명이 모여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 모스크바 동쪽에 위치한 이르자 마스-16 핵 연구소에서도 과학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었다.
몇 달 전 러시아 정부가 약속한 임금인상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첼리아빈스키-70 핵 연구소 연구원의 경우 지난 2개월 동안 월급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물가가 월20%씩 뛰고 있어 이들의 고통은 엄청나다. 이들의 불만이 1차적으로는 경제적인데 있지만 사회적 지위 하락에 대한 우려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몇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핵 연구소에 근무한다는 사실만 발설해도 국가 반역죄로 처벌받았다. 그만큼 이들이 누렸던 혜택도 상당했다. 보안상 이유로 철저치 고립된 생활을 해온 때문에 식량은 물론, 주택이나 월급 면에서도 다른 직종보다 월등히 높았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뒤바뀌어 오지에 고립된 핵 연구소로 공급되는 생활필수품의 가격이 다른 지역보다 오히려 비싸게 되었다.
이처럼 러시아 핵 과학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러시아정부보다 미국이 더 긴장하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러시아 과학자들이 제3세계로 빠져나가거나 관련 정보를 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7천5백만 달러 규모의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모스크바에 직업훈련원과 비슷한 교육기관을 세워 핵 전문가들을 재교육시켜 쉽게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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