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동화로 동심 가꾼다|여류화가 오정희씨|원로시인 서정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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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원로시인 서정주씨(79)와 중견 여류작가 오정희씨(46)가 동심을 일구고 있다. 최근 출간된 『시와 시학』여름호부터「내 어렸을 때 시간들」이란 부제로 동심시편 연재에 들어간 서씨는 전래창작 동화 3권도 민음사를 통해 곧 선보일 예정이다. 86년 세 번째 창작집『바람의 넋』이후 한동안 침묵하고 있던 오씨는『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한양출판간)란 장편 창작동화로 어린이 독자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시계라는 걸 우리는 아직도 전혀 몰랐다./그래서 낮에는/쑥국 새 울음소리가 시계였다./이어서 우는/그 울음소리가 시계였었다./형수께서 쑥떡을 만들어 가지시고/짚신신고 20리를 걸어서/친정나들이를 가시던 봄날/다섯 살 짜리 나도 따라가고 있었나니,/형수께서 그 쑥떡을 한개 꺼내서/내게 주시며/자기도 한개 깨물어 자시면서/"아이고 그놈의 쑥국새 소리 팍팍하기도 하네"하시면/그게 그런 그 한시간 쯤이 되는 것이었다.』
시「쑥국 새 울음 속에서」전문이다. 이번에 선보인 5편의 동심시편을 통해 서씨는 기억의 맨 끄트머리인 다섯 살 적을 길어 내고 있다. 그때의 형수·아버지·외할머니·서당 선생님 등을 떠올리며「추상이라고는 전혀 없는」순수 동심에 처음 잡힌 순수 세계를 아득하고, 아련하게, 그러면서도 서씨 특유의 막힘 없는 시심으로 우리 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한편 서씨는 신선·선녀이야기를 위주로 한 전래창작동화 3권을 이 달 안에 펴낼 예정이다.
지난 90년부터 옛날 자신이 듣고 읽었던 이야기 중 실감나고 어린이들에게 해가 안 되는 것들을 회상해 내 창작해 온 것이 이번에 결실을 본 것이다.
『어릴 때가 다 그리워 환장하겠네. 다 천사였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 시도 쓰고, 동화도 짓고 있으니 저절로 즐거워집디다.』
늙어 건강관리가 중요하다는 서씨는 아침마다 맨손체조를 한다. 그리고 얼마 전 디스크 수술을 받은 부인을 걸음마 시킨다며 더불어 관악산 자락으로 산보를 나간다.『대학교수로 정년까지 지냈으면서도 모르는 것만 첩첩산중』이라는 서씨는『다섯 살 천자문 배우던 때같이 공부하다 가겠다』고 한다.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는 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불의 강』 『유년의 뜰』『바람의 넋』등의 작품집을 펴내며 주제의식과 문체, 그리고 소설적 구성의 측면 등에서「우리시대 소설의 정석」이란 평을 받고 있는 오정희씨의 첫 창작동화. 오씨가 살고 있는 춘천의 한 국민학교 6학년 소녀 송이의 학교생활과 꿈을 그리고 있다.
『이 동화는 내 아이들과 함께 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둥그런 불빛아래 모이는 저녁식탁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새가 먹이를 물어 오듯 학교에서의 일이나 친구들과 지낸 일들을 얘기하곤 하지요. 아이들의 마음에 깃들이는 꿈과 기쁨·슬픔·외로움이 헤아려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까마득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이 되살아나 다시금 그 시절을 사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고1과 중2 오누이를 두고 있는 오씨의 말 마 따나 이동하는 2년 전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과 그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들 시각으로 티끌 없는 세상의 발랄함을 보여주면서 또 사춘기로 접어드는 나이의 막연한 불안과 설렘도 드러내고 있다. 『열두 살 소녀의 눈과 마음이 되어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웠는지 모른다』는 오씨는『마악 열리려는 비밀스런 문 앞에서 가슴 두근거리며 서 있는 내일의 사람들에게 이 동화를 바친다』고 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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