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현장의 실태/「중국 유한공사」 대장정(개방 중국의 오늘: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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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늦어도 기다리면 된다” 만만디 사고/외국기업 중국진출 「토착화」가 중요
경제의 밑둥을 받치는 것은 교통·통신·동력 등의 인프라만이 아니다.
세부 경제의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갖가지 방식과 양태는 때로 도로나 전력 사정보다 더 심각한 경제의 하부구조가 된다.
중국을 찾는 외국의 귀빈들이 공항에서 받는 성심성의의 마중은 때로 미안하기까지 하고 입국절차는 신속하기 짝이 없다.
마중 나온 사람에게 여권만 주고 자신의 짐을 찾을 필요도 없이 그저 공항을 걸어나가 대기하고 있는 차를 타고 호텔로 가기만 하라는 식의 입국·통관수속이 외국 귀빈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다.
다만 가끔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은 결코 그들의 성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같은 몸 따로,여권 따로,짐 따로의 입·출국 절차가 매번 장소나 시간상 딱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 몇시간 씩이나 자신의 여권이 현재 어디 있는지도 모른채 몸은 덜렁 호텔에 있는데 짐은 오지않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성의는 고맙지만 최소한 몸과 짐,여권만큼은 다 함께 이동하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더 고맙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이다.
『한국 기업인들과 가끔 열심히 상담을 하는데도 아직까지 별 성과가 없다. 그들이 너무 조급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아직 선진국같지 않아 모든 일이 늦어지게 마련이라는 것은 잘 안다. 그러나 그게 현재의 중국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텐데 그걸 기다리지 못한다.』
중국서 가장 개방되었다고 할 수 있는 해남성의 한 중국 기업인으로부터 들은 이같은 지적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외국 귀빈들이 묵는 국영 호텔에 처음 들어 샤워를 하려 했을 때 더운물이 안나온다고 속단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투숙객의 조급함 때문이었다. 알고보니 약 30분 이상 물을 틀어놓기만 하면 더운물이 얼마든지 나오는 데도 겨우 30분을 기다리지 못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항에서 따라오지 않았던 짐도 그날 밤늦게 여권과 함께 어김없이 도착했다.
이처럼 『늦긴 늦어도 되긴 된다』는 것이 중국인들의 이야기다. 북경서 만난 한 일본인이 「합작호텔을 경영하며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중국측 합작선의 결정이 너무 늦어 투자지분을 싱가포르기업인에게 팔고 철수하기로 결정」한 일본 기업인 친구의 사례를 귀띔해 준 것을 보면 어디까지 기다려야 할지는 역시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독 홍콩·대만의 기업인들만은 이같은 중국의 틈새 틈새를 잘도 비집고 들어 대단한 성과를 올리고 있고 중국에 투자하는 미국 기업인들중 많은 사람들이 미국 국적의 중국인들인 것을 감안하면 언어와 사고방식의 「토착화」가 현지 진출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해구시에 골프장을 지은 한 대만 기업은 실제로 필요한 골프장 부지의 두배를 확보,전체의 절반에 골프장을 짓고 나머지 절반은 분할해 회원권에 함께 끼워 팔아 성공리에 분양을 마쳤다. 아직까지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해남시 투자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점을 사업에 연결시킨 것이다.
반면 해남성이 주관한 투자설명회에 참석,공식설명을 듣고 저녁 자리에서 성장으로부터 『솔직히 제조업의 투자이윤은 낮으니 여기다 투자하면 대신 땅을 끼워 주겠다』는 언질까지 들었다는 한 미국 기업인은 다음날 아침까지도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북경·해구=김수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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