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욕은 죄 아닌 미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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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 사이먼 블랙번 교수가 기독교에서 전통적인 죄악(Sin)으로 규정해온 '성욕'을 미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데이 타임스 11일자에 따르면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대학 블랙번 교수는 "성욕은 순수한 인간의 본성으로 그 자체의 쾌락을 죄악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성욕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등의 기독교 윤리에 따라 1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당한 평가를 받아왔다. 성욕은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주는 미덕으로 분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블랙번 교수의 주장은 옥스퍼드출판사의 기획시리즈로 출간된다. 옥스퍼드출판사는 기독교에서 전통적으로 죄악시하는 일곱 가지 큰 죄, 즉 칠죄종(七罪宗)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책을 시리즈로 내기 위해 전문가 7명에게 집필을 의뢰했다. 칠죄종은 교만.인색.분노.탐식.질투.나태 등으로 6세기말 대(大) 그레고리 1세 교황이 교리화했다.

나태와 탐식 분야에서도 '미덕론'이 제기됐다. 나태(Sloth)를 연구한 웬디 워서스타인(극작가)은 "근무시간이 길고 일 스트레스가 많아지고, 이에 따라 점점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나태는 오히려 미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로저 스크루턴(철학자)은 "칠죄종의 가르침은 21세기에도 유효하다. 이들 일곱 가지 욕구는 경계하지 않으면 인간의 죄악을 불러일으킨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자신은 물론 이웃에 폐를 끼치게 되며, 성욕을 부추기는 사회는 혼돈을 초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블랙번 교수는 "쾌락과 관련된 일들은 늘 지나치면 곤란한 속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죄악시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면서도 얼마나 자제하느냐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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