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종합사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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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사정분위기와 정부·여당의 방침에 따라 화환안보내기­안받기운동이 착실히 성과를 거두자 꽃집과 꽃재배 농민들이 울상이라고 한다. 몇해전 명절 선물안보내기를 정부가 강력히 독려하자 사과의 재고가 넘쳐 농민이 피해를 보았다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슬롯머신이 된서리를 맞고 많은 업소들이 문을 닫자 경마장에 사람이 몰린다는 소식이다. 대통령이 선두에 나서 강력규제를 밝힌 룸살롱 등 유흥업소의 휴패업이 급증하면서 대신 변태비밀술집이 늘어난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쪽을 틀어막으면 다른 쪽이 비어져 나오는 이런 사회현상을 보면 국가경영이란 참 어렵다는 생각를 하게 된다.
사실 화환이란 보내는 사람에겐 부담이요,받는 쪽에선 그리 쓸모도 없는 것이고,권문세가의 경조사에 늘어선 수십개의 화환은 서민들과의 위화감만 조성할 뿐이다. 이런 화환을 보내지도,받지도 말자는 운동은 환영할만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엉뚱하게 꽃재배 농민피해로 연결되니 정부·여당이 설마 농민을 골탕먹이자는 뜻이 있었을 리는 만무하지만 정작 피해자인 농민은 서운할 수 밖에 없다.
과소비·퇴폐 등 허다한 문제를 낳는 유흥업소를 규제하자는 정책도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이런 좋은 동기에서 나온 정책도 비밀술집이란 반갑잖은 부작용을 빚는 것이다. 슬롯머신규제 역시 경마장을 돕자고 한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정책대상이 되는 인간세상·사회현상이란 것은 정말 복잡하고 무수한 연결고리로 서로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복잡성과 연관성을 미처 생각못한 정책이라면 아무리 좋은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도 실패·시행착오를 피하기 어렵다. 만약 노련하고 통찰력있는 관료라면 화환안보내기 운동을 입안할때 벌써 그의 기안서에는 농민대책 몇줄이 언급됐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국가경영에는 세상사의 복잡한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종합사고·복합사고가 필요하다. 교통대책을 빼먹은 상계동 대단지건설이나 2백만호 목표에만 골몰한 나머지 건설자재 파동을 생각못한 지난날의 실수도 이런 종합사고가 부족했던 탓이다. 지금 정부의 종합사고 능력은 얼마쯤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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