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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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채털리부인의 사랑』으로 유명한 영국의 문호 D H 로렌스는 광원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광원인 술꾼 아버지를 싫어했고 자신이 성장한 탄광촌 이스트우드마을을 혐오했다.
그는 일찍이 탄광촌을 「근대 초기 산업문명의 한 저주받은 유형지」라고 표현했다. 그의 수필 『노팅검과 탄광촌』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검정에 묻힌 벽돌집들,날카로운 가장자리를 번쩍이게 하는 검정 슬레이트지붕들,탄가루로 검어진 진흙,젖은 검정 아스팔트길,음침함이 만물의 속에까지 젖어든듯한 풍경.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그 철저한 부정,삶의 즐거움에 대한 그 철저한 부정』.
이 글 뿐만 아니라 초기에 쓰여진 그의 글 가운데는 탄광촌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대목이 많고 그 까닭에 그는 고향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그의 대작들이 대부분 고향을 떠난 이후에 생산된 것이고 보면 고향인 탄광촌에 대한 혐오와 그의 문학적 성공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 4월의 비극적인 사북사태 이후 탄광촌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새로워지기 시작했고,광원의 아들이며 탄광촌 출신인 몇몇 신인작가들이 등장해 「검은 땅 비탈 위의 가파른 삶의 모습들」을 실감있게 조명했다.
노동문학·농촌문학 등과 함께 「탄광촌문학」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년전 부터의 일이다. 비평가들은 그들의 작업을 가리켜 『우리 사회의 가장 절박하면서도 절실한 삶의 표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탄광촌에 대한 관심은 그나마 점점 시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다. 세상이 워낙 시끄럽고 관심을 가져야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89년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조치」감 발표되고난 후부터 태백탄전지대는 서서히 폐허로 변하기 시작했고,광원 1만6천여명을 비롯한 탄광촌 주민 수만명이 생계가 막연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말이다.
엊그제 대백시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민 궐기대회에 생존권을 찾으려는 몸부림에 다름아니다. 로렌스의 시대와 1세기의 차이가 있은데도 「근대 초기 산업문명의 한 저주받은 유형지」로서의 탄광촌이 아직도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이 기이하다. 관심을 가져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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