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26대 그룹 총수와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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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사­정은 공동운명체”/김 대통령/“임금·복지 성의껏 해결… 3자개입 막아야/석달에 한번씩만 만나면 경제회생 확신”/총수들
김영삼대통령은 2일 오후 청와대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대기업 총수 26명과 만찬을 겸한 취임후 첫 회동을 갖고 2시간30여분간 의견을 교환했다.
▲김 대통령=경제는 원칙에 입각해 추진하겠지만 임기중 보완해가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동안 노사분규가 나면 임금을 올리고 공권력 투입으로 풀어왔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낳는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근로자·기업인·정부 모두는 공동운명체입니다.
기업인이 인간적인 측면에서 근로자를 대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래야만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근로자들도 집단이기주의 행동을 고쳐야 하며 정부도 그같은 행동을 묵과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국가경제를 망치고 국민이익에 배치되는 노사분규가 계속될 때 중대한 결심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적극 중재” 필요
▲회장1=현대 노사분규는 제2의 노총을 설립하려는 배후세력의 조종에 의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핵심문제는 해고자의 복직이며 웬만한 사람은 거의 다 보직시켰습니다.
제3자 개입을 정부차원에서 단호히 막아주십시오. 임금·복지·후생 등은 우리가 얼마든지 성의껏 해결할 수 있습니다.
▲회장2=한국기업의 노임이 영국보다 오히려 높습니다. 한국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노임과 기술입니다. 기술문제의 80%는 자체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20%는 정부가 지원해야 합니다.
▲회장3=현대 노조의 파업 움직임과 연대,대우조선도 동조파업 움직임이 있습니다. 단순히 현대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기업 노조와 연대,계획대로 총체적으로 끌고 가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정부가 적극 나서 중재해주거나 제3자개입을 막아줘야 합니다.
▲회장4=우리 기업의 경우 과거 대파업이 일어났을 때 각 기업의 노조측이 연합하는 바람에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금은 그룹차원의 기획조정실을 해산,그룹차원의 가이드라인을 아예 없애고 개별사의 자율에 맡기니 노조연합도 결성되지 않아 오히려 타결이 순조롭습니다.
▲회장5=금년만은 신경제 계획을 실시하는 해이니 협조해주면 과실을 나누겠다고 호소하자 고통분담 차원에서 근로자들이 협조해줬습니다.
▲회장6=대통령이 기강확립을 국정지표로 삼았으나 산업현장에서는 노조라인이 생산계획을 좌지우지하는 등 아직 기강이 확립되지 않고 있습니다.
▲회장7=현대 노조가 문제가 되니 이미 교섭을 끝냈거나 교섭중인 기업들에서도 다시 교섭을 하자거나 현대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합니다.
▲회장8=하반기가 되면 투자가 되살아나고 우리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회장9=오늘의 이 모임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출을 해야 살고 문제는 우리의 정신입니다. 석달에 한번씩 이러한 만찬에 초대만 해주면 분명 경제는 살아날 것입니다.
○외국선 땅도 무상
▲회장10=신경제 5개년 계획은 기업들이 오랫동안 갈망해온 것이 들어있습니다.
▲회장11=옛날에 어디에서 전화가 오면 이게 무슨 말인가하고 고민을 했습니다만 지금은 대통령께서 정치자금을 한푼도 안받겠다고 하니 쓸데없는 걱정을 안해서 좋습니다.
▲회장12=여기있는 기업인들은 기업이 내것이 아니고 국가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일본에 20년 정도 뒤졌는데 학계와 정부·기업이 일체가 돼 과학기술 개발에 전념해야 합니다.
▲회장13=기업인들의 희망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재벌을 죄악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섭섭합니다.
▲회장14=모든 돈에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인격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인격을 가진 돈은 실명을 하면 부끄러워 안나오게 마련입니다. 돈을 잘못 다루면 아파트와 토지·해외로 달려갑니다. 돈 가진 것이 죄라는 생각은 바꾸도록 해야하며 실명제를 안하는 것도 죄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재벌 죄악시의 섭섭
▲회장15=외국에서는 공장을 짓는데 대지를 무상으로 주거나 융자도 해주며 차관도 무이자로 해주고 있어 기술만 갖고 들어가면 대환영합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해주면 정경유착이라고 할 것입니다. 국내에서 투자가 잘 안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데 있습니다.
▲김 대통령=그동안 여러가지 보고를 받았지만 여러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자유롭게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 자체가 엄청난 변화입니다. 여러분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니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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