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국회」 벗어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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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국회는 정치 중심에서 밀려나도 한참 밀려나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내일 다시 임시국회가 열린다지만 국민 관심도 끌지못하고 매스컴에서 제대로 뉴스 대접도 받지못하고 있다. 국회가 왜 이렇게 됐는가.
우리가 보기에 그것은 한마디로 자업자득이라고 할밖에 없다. 국회가 당연히 할 일을 안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상적인 국회라면 당연히 열띤 논쟁을 벌이고 진지한 토론을 거듭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국회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가령 지금 현대의 노사분규로 국민 걱정이 가중되고 한의­약사간 분규로 세상이 시끄러워도 국회는 잠잠하기만 하다. 무노동 부분임금 문제로 정부측이 내부난조를 보이고 북한핵문제를 놓고도 정부의 대북정책에 중심이 안잡히는 듯한 상황이 빚어졌지만 국회는 역시 말이 없다. 북한의 노동1호 미사일 실험은 일본정계가 더 크게 떠들뿐 정작 우리 국회에서는 걱정의 소리 한번 나온 일이 없다.
이처럼 국민이 궁금하고 불안해하는 일들을 내버려두고 국회는 무슨 일을 할 작정인가.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때마다 밤을 새워서라도 격론을 벌이고 관련장관을 불러내 정부의 대응능력을 밑바닥까지 점검하는 것이 국회가 할 일이 아닌가.
우리는 이런 중대한 시기의 국회무기력을 개탄하면서 국회를 이 꼴로 만든 여야정당의 무능을 질책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다수당인 민자당은 국회를 활성화하지 못한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다. 국회가 행정부에 부담이 된다는 케케묵은 사고방식이 아니라면 왜 문제가 있을 때마다 국회를 못 여는가. 최근 민자당은 민감한 대외문제가 표출되고 집단이기주의의 충돌로 세상이 시끄러워도 마치 남을 일 보듯 하고 매사에 무기력한 인상을 준다.
야당의 문제제기 능력 역시 실망스럽다. 정부내 손발이 안맞고 정책혼선이 일어나는데도 국회를 통해 따지고 문책하는 노력이 별로 없다. 고작 대변인을 통한 「성명정치」와 과거사시비에 매달리는 안이한 자세에 머물러 있다. 허다한 호재가 있는데도 짚고 따지고 파고드는 끈기도,매운 맛도 요즘 야당에선 보기 어렵다.
우리는 국회가 이렇듯 정치변방에 밀려나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국회가 국정논의의 중심무대가 되고 사회의 공론을 주도하는 본래의 위상을 빨리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지금 우리사회가 안고있는 심각한 갈등이나 최선의 중지를 모아야 할 대북­대외문제 등을 생각하면 국회활성화는 시급한 문제다.
당장 내일 문을 여는 임시국회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일과성 질문·답변으로 지나가면 그 뿐인 국회가 아니라 지금 답을 못찾아 엄청난 국가적 대가를 치르고 있는 각종 현안들을 바닥까지 점검하는 국회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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