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 1백일계획의 허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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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경제운용 솜씨를 총체적으로 선보인 신경제 1백일계획은 행정규제 완화와 중소기업 활성화 등 부분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최우선 과제였던 경기활성화에 있어 기대에 못미치는 실적을 남긴채 1백일째 마감일을 맞게됐다.
1백일 계획기간에 해당하는 2·4분기 경제동향을 들여다보면 기업의 설비투자 촉진을 위한 정책수단이 총동원된 가운데서도 투자증대의 효과가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은 사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불황탈출을 주도한 수출의 호조 역시 그 내막을 보면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는 무관한 외적변수에 힘입은 것이었다. 3%를 웃도는 실업율과 5월말로 4%선을 넘어 연말 목표치 5%를 위협하는 소비자물가 상승폭도 1백일계획 실적평가의 감점요인임에 틀림없다.
계획기간 중의 경제정책은 당초 「선활성화 후개혁」 전략 수립에도 불구하고 경기부양과 위축의 양쪽 시책들이 혼재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채 불쑥불쑥 튀어 나왔다가 사라진 재벌규제대책,금융실명제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그리고 산업계의 임금협상이 본격화된 시기에 벌어진 노동정책의 일대 혼란은 특히 대기업들의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신경제 1백일계획의 정책 집행과정은 정부의 경제정책 내용은 물론이고 경제팀의 능력과 팀웍에 대한 좋은 평가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경제장관회의가 자주 개최됐고,한때 상공자원부 공무원들이 기업현장에 나가 실물경제의 현실을 체험하려 했던 시도는 국민들이 신뢰감 형성에 보탬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빈번한 부처이기주의의 표출,부처간·당정간의 불협화음과 정책결정 혼선의 노출은 경제팀의 효율적 경제운용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을 증폭시켰고,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경기부양책의 집행시기와 정책효과의 가시화시점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이 있게 마련이므로 1백일계획의 일부 성과는 하반기에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정부가 예정했던대로 하반기부터 실시할 각종 경제개혁 조치들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경제운용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1백일 계획을 마무리하면서 정부는 우리 경기부양과 안정,성장과 형평의 실현이라는 상충되는 목표들의 우선순위와 정책의 강도를 체계적으로 짜맞추고 이들 목표들의 조화를 살린 경제정책 기본방향에 입각해 세부적인 정책수단들을 선택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에 관한 경제부처간의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는 지난 1백일 동안 끊임없이 반복돼온 혼선과 시행착오,그리고 이로 인한 경제활성화의 지연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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