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사터/팔공산 원형복원/대장경 간행했던 신라 고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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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본격 발굴 4년… 금당터 발견/“2천승려 규모 대사찰” 확인
최초로 고려대장경을 간행,초판 고본대장경을 보관했던 팔공산 부인사지가 발굴 4년만에 원형이 복원돼 웅대한 대가람의 제모습을 찾고있다.
대구시내에서 동북쪽으로 16㎞쯤 떨어진 대구시 신무동 해발 8백43m의 팔공산 계곡에 있는 부인사지는 신라와 고려의 불교문화와 역사가 스민 보고.
신라 27대 선덕여왕(632∼647)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사찰은 고려조에 이르러 불경의 힘으로 외침을 막고자 고려대장경을 새겨 보관했던 법보사찰로 유명하다.
고려 10대 현종조부터 13대 선종조(1084년)에 이르기까지 77년에 걸쳐 이곳에 도감을 두고 완성했던 초판 고본대장경은 대반야경 6백판과 화엄경·금광명경·묘법연화경 등 모두 6천여판.
그러나 이 대장경판은 고려 23대 고종 19년(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거의 불타 없어지고 일부 남아있던 1천7백15판이 일제때 밀반출돼 현재 일본 경도의 남례사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고종은 이 호국경판이 몽고군의 침입에 의해 불타 없어지자 다시 불력으로 외침을 막기위해 해인사의 8만대장경을 조판했다고 전해진다.
이같은 부인사지가 7백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완전히 폐허로 변해 당간지주와 초석·축대·장대석 등이 일부 남아있고 9세기때 제작된 것으로 전해진 석조쌍탑·석등·부도등 문화재급 일부 석조유물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에따라 정부는 88년 5월 부인사지 일대 1만8천여평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했고 대구시는 경북대·대구대박물관에 의뢰,지표조사와 함께 89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작업에 나섰던 것.
91년 10월까지 실시한 대구대박물관의 1,2차 발굴조사결과 정면 5간 측면 4간 규모의 경판고지와 중문지로 추정되는 절터가 발견됐다.
또 지난해 4월부터 현재까지 실시하고 있는 경북대박물관의 3차 발굴조사에서는 부인사입구 동·서탑앞에 있는 동서 21.5m,남북 16m 크기의 탑전 건물터와 삼존불을 봉안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봉황·비천·연화문 등이 새겨진 막새기와 적심석 등이 발굴돼 이곳이 부인사 금당지임을 확인했다.
아같은 발굴조사 결과로 몽고의 침입과 임진왜란 등 두차례의 국난을 통해 폐허로 변해버린 부인사가 고려대장경을 조판할 당시 2천여명의 승려가 수도했으며 39개의 부속암자가 곳곳에 산재한,전국에서유일하게 승시장이 웅대한 사찰이었음이 밝혀졌다.<대구=홍권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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