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앞 잦은시위 민자당 골머리/하루에도 몇건씩 “민원”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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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시위대끼리 자리다툼 기이한 풍경도/당차원 해결못할 무리한요구 대부분
21일 오전 여의도 민자당사 앞길에서는 두 무리의 사람들이 서로 대로 점유권을 주장하며 가벼운 말다툼을 벌이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졌다. 『우리는 새벽부터 와서 있던 자린데 와 비키라카요』 『조금만 옆으로 당기면 우리도 옆에서 같이 데모할 수 있잖아요.』
한쪽은 경북 울진에서 버스를 전세내 밤새워 상경한 민자당원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한의대생 학부모들이었다. 도로점유권을 주장하는 다툼이 필요할 정도로 요즘 민자당사 앞길은 인기(?) 있는 시위장소가 됐다.
21일 하루만해도 이들 외에 노원지역주택조합 조합원들이 『주택조합 사기의 주범인 가수 ○○○씨를 붙잡아 구속해달라』며 한바탕 시위를 벌였다. 이날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당사앞 시위가 끊이지 않은 셈이다.
이 때문에 요즘 민자당사 주위에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철수했던 전경들이 다시 나타나 당사를 휘감고,하루종일 버티기를 한다. 전경들의 옷차림이 전투복에서 사복으로 바뀌었고 시위가 특별히 폭력적이지 않다는 것이 과거와의 차이라면 차이다. 그러나 세련된 시위임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이지는 않은 듯 하다. 지난 5월 가장 자주 민자당사를 찾던 과천 주암동 철거민의 경우 주로 소음시위를 벌였다. 꽹과리를 두드리면서 개사한 운동권노래를 부르고 막대기로 땅바닥을 두드리는 소음효과를 내기도 했다. 비가 오면 일제히 비옷을 입고 『우리는 집에 가도 비맞고 땅바닥에 자는 것도 마찬가지』라며 아예 차가운 바닥에 눕기도 했다. 그렇지만 당에서는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들의 요구수위가 너무 높아 당으로서도 속수무책이라는게 당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과 과천을 잇는 터널과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지금까지 점거해온 무허가 판자촌이 철거되게되자 이주장소 마련과 이주비용 보상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도 민자당과 관련 있는 민원이면 미흡한대로 민자당의 입장을 들을수는 있다. 예컨대 울진 당원들의 경우 새로 영입한 무소속 이학원의원이 과거 국민당의원으로 민자당에 반대했던 사람이라는 이유 등으로 당에서 현재의 김종권위원장을 경질하고 이 의원을 울진지역 신임 지구당위원장으로 임명하려는데 반대한다는 뜻을 표시할만 하다. 그러나 그들이 새벽같이 달여와 시위끝에 얻은 답변은 『당에서 결정한 일이니 이해해달라』는 정도에 불과했다. 굳이 많은 사람이 상경하지 않고 대표만 왔어도 마찬가지 답변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찾아오기 전이나 후나 민자당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 정도니 당과 전혀 무관한 주택조합 사기사건의 범인체포와 구속을 요구하는 시위나 무허가주택의 이주비를 달라는 요구등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민자당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매일 하는 데모인데 뭘 신경쓰냐』는 식이다. 다만 과거처럼 전경과 시위대가 대치하는 풍경이 다시 시작됐고 주위의 사무실에서는 이 때문에 『시끄러워 일을 못하겠다』는 항의만 쏟아질 뿐이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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