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존 그만 「우리 학문의 길」홀로서기 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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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80년대 들어 『한국문학통사』란 저술로 한국문학사에 기념비적 업적을 쌓은 국문학자조동일교수(54·서울대)가 「우리 학문의 풍토가 진정 이래서는 안된다」는 통분과 호소를 쏟아 담은 이례적인 저서를 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조교수가 20여년간 연구와 강의에 전념하며 줄곧 가슴에 담아왔던 생각을 털어놓은 3백20여쪽 분량의 『우리 학문의길』(지식산업사간)은 우리학문도 이젠 「의존에서 자립으로, 수입에서 생산으로 방향을 바꾸어 우리 자신의 절박한 문제들에 해법을 제시하는 민족학문의 길을 걸어야한다」는 내용의 주장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서양이론수용과 그 반성의 소산이었던 서양이론의 토착화 모두가 「학문의 나그네」였음을 비판하고 『서양학문 자체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가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세계적 일반이론을 창조해 학문의 주인이 되자』는 주장이다.
이같은 논지를 학술지가 아닌 단행본 출판으로 지식인사회에 직접 전달한 조교수는 관련학계는 물론 일반 독서층으로부터 연구업적 외에 학문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을 누구보다 인정받는 중견학자여서 지식인사회 전체에 상당한 파문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학문에 보탬이 되지 않는 학자란 직무유기라고까지 다그친 조교수는 이 책 서문에서 『죽어 가는 학문을 살려야 한다고 외치고 살릴 수 있는 방도를 제시하기 위해 이 책을 쓴다』고 집필동기를 밝혔다. 또 조교수는 정부가 교육에 관해 획기적인 개혁을 하겠다는 말만 하면서 아무런 방법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록 주장이 과격하고 논리가 성글어도 기다릴 겨를이 없었다』며 이 책을 앞당겨 집필해야만 했던 사정을 전하고 있다.
이 책에는 「우리학문은 어떤 패러다임을 가져야 하나」, 「제3세계학문의 주체성은 어디서 찾아지나」, 「세계일반이론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등의 주제가 「우리학문의 고민」, 「우리학문의 위상.」, 「우리학문의 각성」, 「우리학문의 과제」, 「우리학문의 성과」의 다섯개 장으로 나뉘어 실려있다.
조교수는 먼저 우리학문의 처지를 말하면서 전국체전과 올림픽출전의 비유를 들었다. 즉 전국체전출전과 같은 연구라면 국내자료에 외국이론을 수입해 써도 되지만 올림픽에 나간다면 외국이론을 소상히 아는 정도로 잘난 체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는 올림픽에 참가한정도로 전국체전 우승자를 깔보는 풍토였다는 반성이다.
그러나 우리의 학문전통은 원효 이규보 이황 서경덕 최한기 등에서 보듯이 이미 중국·일본과는 다른 세계적 일반이론으로서의 독자성·창의성을 이룬 예가 있고 우려학문의 현재 역시 일반이론창조의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조교수는 그런 학문의 회생을 위해서는 『수학능력이 없는 학생, 직무유기중인 교수, 교육여건에 관심 없는 대학경영자들이 야합해 학문을 추방하고 있는 대학 등의 교육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우리 학문성과의 예증으로 감치 자신을 든다면서 자신은 『한국문학을 통해 세계문학의 일반이론을 수립하고자했다』며 후학들이 자신을 딛고서라도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한데 아우르는 일반이론을 완성해줄 것을 간절치 당부해 눈길을 끌었다. <윤철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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