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분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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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약 조제문제를 둘러싼 한의대사태는 우리 사회,특히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에 큰 의문을 갖게 한다. 도대체 이토록 많은 사람이,이토록 오랜 기간에,이토록 격렬한 갈등을 겪고 있는데도 정부는 뭘했느가. 어떻게 했길래 사태가 완화되고 해결기미가 보이기는 커녕 4천명가까운 학생의 대량유급이라는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는가.
보사부와 교육부가 그동안 노력한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누구말마따나 구두신고 발등긁기 격으로 전혀 효과가 없으니 당국이 사태의 본질을 아직도 모르고 있거나 대처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합리적 방안을 내놓아도 말을 안듣는다고 할지 모르나 정부는 사인과 달라 얘기가 안된다고 주저앉을 입장이 아니다. 문제가 있는한 끝내 대들어 풀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사부의 태도를 보면 하루에도 몇백명씩 유급되고 있는데도 TV에 나온 실무자는 이제 겨우 약사법개정을 위해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식이다.
정부도 딱하지만 정치권이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도 해괴한 일이다. 정치가 무엇인가. 갈등의 조정이 정치의 중요한 기능이 아니겠는가. 이런 문제가 생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여야정당은 경쟁적으로 나서 원인은 무엇이고 해결책은 무엇인지 조사하고,안을 내고 무능한 정부당국을 질타해야 할텐데 석달열흘이 넘도록 꼼짝도 않고 있다.
또 이런 문제야말로 국민의사를 알아볼만도 한데 정부나 정당들은 그 좋아하는 여론조사도 왜 한번 안하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고충은 안다. 한의편을 들면 약사가 반대하고 약사편을 들면 한의들이 반발하니까 어느쪽 표도 놓치기 싫은 그 심정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이 엉거주춤하고 있는 가운데 연일 몇백명이 유급되고 한방수련의들의 집단사퇴까지 나오고 있다. 나라에 정부가 있고,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과 정당들이 있는 터에 이런 대규모 갈등을 하염없이 대책없이 방치만 하고 있다니 말이 안된다. 외국 신문에 해외토픽이라도 나갈까 걱정이다.
정부는 보사부로 안되면 총리주재 관계장관 회의라도 빨리 열고 정당은 국회에서 즉각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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