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기자 구속」을 보는 외신의 눈/고대훈 국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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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앙일보 정재헌기자가 구속된 14일 AFP·AP·로이터 등 한국주재 외국 통신사 기자들은 오랫동안에 큰 「뉴스」 거리를 만났다.
남­북한 문제나 학생들의 데모 또는 경제발전 등의 기사에만 익숙해있던 한국에서 아프리카나 중남미같이 언론탄압이 심한 나라에서나 볼수 있는 희한한 광경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재헌기자가 14일 국방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한국기자협회는 이를 언론탄압이라며 정 기자의 석방을 촉구했다』(로이터),『한국의 유력 일간지 중앙일보의 기자가 14일 권영해 국방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정재헌기자의 구속은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AFP).
이들에게 정 기자의 권영해 국방장관 출국금지 보도­권 장관의 고소­하루만의 전격구속 등 일련의 이례적인 신속한 법집행은 과거 군사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생경한 사건이었다. 특히 민주화를 내건 문민정부 아래서 벌어지고 있는 이 사건은 김영삼정부의 대언론정책의 일단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외신기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여기서 서방 선진국의 사례를 되돌아보자. 영국의 존 메이저총리는 지난 1월28일 자신이 유부녀와 혼외정사를 가졌다고 「허위보도」한 두 잡지사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몇푼의 위자료를 받아냈다.
그러나 영국 최대의 권위지로 평가받는 더 타임스지는 소송이 끝난지 이틀후 메이저 총리와 문제가 된 여인의 사진을 나란히 실어 1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이어 칼럼니스트 사이먼 젠킨스는 『명예를 좇는 공직자는 사회적 관심사며 따라서 출처가 불분명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기사감이 될 수 있다. 공인은 이를 감수해야 한다』며 메이저 총리를 점잖게 꾸짖었다. 더 타임스의 충고를 받아들인 메이저 총리는 몇달뒤 도청 등을 통한 영국왕실 스캔들에 대한 보도행태가 문제가 돼 이를 규제할 법제정 논의가 한창 무르익자 이렇게 쐐기를 박았다. 『제2차대전 전시때도 영국정부는 언론을 통제한 적이 없다. 국민의 알권리는 언제나 우선돼야 한다.』
유럽에서 기자가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된 예는 역사책 속에서나 찾을 정도로 드물다. 기자의 보도는 국민의 알권리를 무엇보다 우선한다. 특히 공직자의 행동은 공익과 직결돼 있어 언론의 예민한 촉각을 자극한다. 그래서 공익을 위한 공인에 대한 순수한 보도는 약간의 오류가 있을지라도 관대한 것이 서구사회의 언론에 대한 시각이다. 언론의 위축은 진실을 은폐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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