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역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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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금 생각해 보면 1987년 6월10일은 기막힌 한편의 드라마였다.
한쪽에서는 비장한 분위기 속에 「고문치사조작 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운동」이 열리고,다른 한쪽에서는 5색 꽃가루가 쏟아지는 가운데 대통령후보 지명대회가 화려하게 열리고 있었다. 한쪽에는 「영구집권 시나리오」를 규탄하고 꽃다운 젊은 목숨을 앗아갔느냐고 부르짖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체육관식 대통령선거에 나설 후보의 수락연설이 박수 속에 진행되고 있었다.
6년전 6월10일의 신문을 펴보면 대번에 최루탄 냄새가 난다. 이날 오후 6시 전국 22개 도시에서 일제히 열리기로 된 국민대회를 정부는 6만경찰을 풀어 원천봉쇄에 나섰다.
경찰은 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최루탄을 쏴댔다. 롯데호텔에서도 최루탄을 쏘아 외국관광객들이 본의 아니게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눈물을 흘렸고,마산에서는 최루가스 때문에 국제축구시합이 열리지 못했다.
이날 김영삼 당시 민주당총재는 오후 5시30분 집결예정인 롯데백화점 앞으로 갔으나 경찰이 완력으로 승용차를 밀어냈다. 그의 그라나다 승용차는 최루탄을 직격으로 얻어맞고 경찰 구두발에 채어 여러군데 흉하게 찌그러졌다. 김 총재 일행이 국민대회장인 태평로 성공회 앞에서 옥신각신 하고 있을때 노태우 대통령후보와 그 일행의 차량들이 힐튼호텔 후보지명 축하연 참석을 위해 그들 옆으로 지나갔다.
어떤 소설가가 이보다 더 극적인 픽션을 쓸것인가. 당시 시국대책의 책임을 맡았던 안기부장 등 다수 인사들이 지금 김 대통령의 충실한 지지자로 민자당의원이 되어 있고,그때 거리에 있던 한 사람은 청와대에,체육관에 있던 두 사람은 연희동에 가있다. 6년전 그때 대통령은 『어떤 혼란조성도 엄단한다』고 서슬푸르게 강조했는데 바로 그저께 정부·여당회의는 6·10기념집회와 관련해 과격시위 강경대처를 발표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시엔 소설보다 극적인 상황이더라도 역사는 결국 더많은 사람의 생각대로 간다는 점이다. 중산층의 대거가세로 마침내 민주화의 기폭이 된 6·10이 그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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