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망과 구국(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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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년전 6월4일 북경 천안문 앞의 유혈극이 벌여지기 한달전 국경대학에선 5·4운동 70주년 기념 토론회가 열리고 있었다. 5·4운동이란 우리의 3.1운동에 영향을 받아 북경대학생들이 벌인 대규모 학생시위로 중국의 반일 반제 운동과 신문화운동으로 발전하는 역사적 사건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천안문사태는 5·4운동이 모태가 된다. 이 5·4운동을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모임에서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인 이택후는 중국 현대사의 흐름을 두가지 흐름으로 요약해 설명했다.,
하나의 흐름은 구망사상으로 빈번한 외세 침입으로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자는 구국의 목소리다. 이 사상은 언제나 감정적으로 호소하고 집단적인 희생을 요구하면서 공산당의 무장투쟁을 주도했다. 또 하나의 흐름은 계몽사상으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내세우고 민주주의 와 과학을 앞세우지만 이 사상은 언제나 구망사상에 눌려 기를 펴지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 현대사는 구망을 외친 공산당의 무력투쟁으로 군부의 절대적 권위와 평균주의가 지배하는 공산사회로 변했다는 것이다.
구망과 계몽의 변주곡이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사상적 흐름이라는 이택후의 독특한 이론은 4년전 천안문사태 당시의 이론적 주류를 형성하고 구망의 군부독재와 평균주의에 맞서 과학과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계몽사상의 뜻을 펴자는 항거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의 현대사를 살펴봐도 「구망적」 요소는 많았다. 군인들이 총을 거꾸로 들고 한강을 넘어설 때도 구국적 용기였고 헌법을 갈아치우고 독재정권을 미화할 때도 언제나 구국의 결단이라고 외쳤으며 새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내세우는 슬로건 또한 모두 구국적 차원이었다. 모든게 구국의 결단이거나 구국적 조처였고 지난 정부는 언제나 망국적 사회로 규정짓고 새 정부는 언제나 구국적 차원에서 일을 벌인다.
중국식 구망사상이나 우리식 구국적 결단은 그 모두가 국민적 감정에 편승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권력을 장악하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거창한 구국의 결단보다 한 사람의 인권과 생명과 재산이 중시되고 보호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임을 중국 지식인들도 알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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