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중립 지킬 김 법무장관 왜 경질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성호 법무부 장관의 사의를 수용하겠다고 청와대가 어제 발표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장관을 바꾸는 건 고유 권한이다. 장관 스스로 물러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김 장관의 교체는 그 배경이 석연치 않고, 시기도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김 장관이 권력 핵심부와의 갈등으로 낙마할 것이란 소문이 나돈 지는 오래됐다. 어제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도 사퇴 압력설은 부인했지만 “경질이냐 아니냐는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진 사퇴는 아니란 뜻이다.

 김 장관은 분식회계를 자진 신고한 기업의 형사처벌을 면제해야 한다는 등 친기업적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또 “경제의 발목을 잡는 법과 규제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해온, 현 정부 내에서는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몇 안 되는 합리주의자였다. 이런 점들이 현 정권 내 운동권 출신 실세들과는 갈등을 빚어왔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장관의 정책적 의견이 대통령과 다르면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김 장관의 교체는 그보다 훨씬 정치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공무원의 선거 중립을 규정한 공직선거법이 위헌이라고 소송을 제기한 이후 국회에서 김 장관은 대통령 뜻과는 반대로 “(공무원의 선거 중립 규정이)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 직후부터 교체설이 나왔다. 최근에는 대선 정국에서 검찰이 선거에 너무 깊숙이 휘말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해 왔다. 야당 대통령 후보의 고소·고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배당하는 것을 반대하고, 고소를 취하하면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어 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여야 합의로 선거법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선거 중립 내각으로 바꾸어온 것도 그런 이유다. 그 핵심은 법무·행자부 장관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거꾸로 가고 있다. 공무원의 선거 중립을 주장한 법무부 장관을 오히려 ‘경질’했다. 이것이 선거에 본격 개입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면 이 나라 민주주의의 장래를 위해 정말 걱정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