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비정규직, 능력개발로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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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현실을 냉정히 되돌아보고 보다 중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비율이 36%나 되고 주요 선진국에 비해 높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어느 정도 비정규 일자리가 불가피하며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통계청의 2006년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전체 540여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중 자발적인 비정규직 비율이 51.5%였다. 이는 비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근로자들의 수요도 만만치 않음을 의미한다.

 비정규직 고용 개선을 위해서는 현 사업장에서의 정규직화 이외에도 다른 사업장으로의 전직을 통한 정규직화, 창업 등 다양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자발적인 비정규 일자리를 질적으로 개선하고 전체 비정규직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높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휘되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여러 해법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그중 유력한 하나의 방법은 비정규 근로자의 경력과 능력의 개발이다. 능력개발이야말로 숙련 수준을 높이고 생산성을 높여줌으로써 근로조건 개선과 보다 나은 일자리로의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 나아가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도 높인다는 점에서 개별적 해법이자 동시에 사회적 해법이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비정규직은 능력 개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2005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비정규직의 다수를 점하는 임시일용직의 직업능력개발훈련 참여율은 7.1%에 지나지 않는다. 정규직의 참여율 16.2%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현재와 같은 저임금, 열악한 근로조건에다 능력개발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으면 비정규직의 함정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2006년 사람입국일자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1년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이동 비율은 15%로 OECD 선진국 평균 30%의 절반에 불과하다. 정부는 비정규직 능력개발의 필요성을 간파해 근로자능력개발카드제 등 각종 방안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능력개발에 대해 노사 양측이 무관심하고 교육훈련 성과도 인사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은 직업훈련기관에서 교육받을 기회도 얻기 어렵지만 이들의 특성에 맞는 단기 모듈식 교육훈련 과정들도 제대로 개설돼 있지 않다.

 비정규직 능력개발이 근본 해법인 만큼 앞으로는 노사 모두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 교육훈련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인식하고 기업의 생산성 향상, 근로자의 경력개발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기업은 경력이나 교육훈련 성과가 뛰어난 비정규직을 과감하게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인사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근로자 역시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하게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정부는 비정규직의 특성에 맞는 교육훈련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도록 관련 법규와 제도의 지속적인 개선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비정규직이 쉽게 교육훈련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적극적인 홍보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능력개발을 위한 조건을 만들고 교육훈련을 활성화하는 일은 우리 시대 노사정 모두의 과제다. 때로는 더디고 미련해 보이는 길이 지름길일 수 있다.

장홍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