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봉 김성일 학술토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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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역사는 정확히 조명되어야 사실로서 빛을 발한다. 또 역사적 평가와 학문적 평가는 당연히 궤를 달리해야 한다.
중앙일보 5월20일자(일부지역21일)13면에는「학봉 김성일 선생 순국 4백주년 학술토론회」에서 논의된 그의 학문과 구국활동이 개략적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잘 아는 바대로 김성일은 임진란 직전 통신사의 일원으로 왜를 방문하고선 정사 황윤길과 단지 당파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엉터리 정황을 보고해 온 나라를 전란의 와중에 휩싸이게 한 장본인이 아닌가. 그의 오류·오판은 대외적으로는 동양의 역사를 반전시켰고 대내적으로는 조선8도의 백성을 7년 전쟁의 도탄에 빠뜨렸다.
비록 그가 심기일전해서 구국활동을 이어가다 막판에 순국하긴 했지만 엎질러진 물을 담아보겠다는 어리석음이요, 「국가존망」이라는 대국적 견지를 마다하고 그야말로 소탐에 묻혀 대실한 대표적 인물이다.「왜가 군사를 일으킬 기색이 없다는 잘못된 보고를 올린 실책만으로 일반에 알려져 있으나 그것은 왜적이 침입한다는 소식에 들떠있는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토론회의 자체 평가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역사를 그렇게 왜곡 해석해도 되는건지 묻고 싶다.
만의 하나라도 지연이나 혈연 및 인맥에 의한 이기주의가 개재되었다면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비근한 예로 6·25발발 직후 이승만대통령이「수도사수」를 민심 진정용으로 시간마다 거짓 방송한 결과가 어떠했던가. 수많은 납북인을 낳았고 서울시민들이 당한 수난은 필설로 형언키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은폐하면 역사상 돌이킬 수 없는 죄과를 남긴다는 교훈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하건대 김성일이「퇴계학의 주맥을 잇는 영남학파의 거유」라는 학문적 경가와 조정 현신으로서의 그의 처세실상은 분명히 달리 평가되어야 한다. 【허남욱<부산시 해운대구 우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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