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난장이가 쏘아 올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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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어쩌다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언제 처음 소설을 쓸 생각을 했으며 또 쓰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주저 없이 78년 여름과, 그해 여름 책의 첫장에서부터 끝장까지 한줄 빠뜨림 없이 원고지에 옮겨 적어 보았던『난장이…』이야기를 한다.
강남이 오늘날의 강남으로 터를 잡기 시작하던 무렵 중동 붐과 오일달러의 환상, 오직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구조적 인플레이션, 돈 바람이 나 미친년 치맛자락처럼 날뛰던 부동산 투기, 같은 하늘 아래에 천국과 지옥을 가르던 재개발사업, 부패정권과 결탁한 독점재벌들의 문어발식 경제력 등 내가 기억하는 70년대 후반의 모습은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조세희의 『난장이…』에 담긴 모습 그대로이기도 하다. 수록된 작품 대부분, 그것이 낱편으로 발표될 때 챙겨 읽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묶여 나온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또 다른 감동으로 와 닿았다. 한 문장 한 문장 딱딱 끊어지는 단문의 산뜻함 외에도『난장이…』은 소설로서뿐 아니라 그것은 우리나라 70년대 후반의 여러 모습을 닮은 가장 충실한 사회임상학 보고서였다. 아니, 내겐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소설 교과서였다.
밤새워 작품을 읽고 난 후 나는 이제까지 마음속으로 막연히 가지고 있던 소설에 대한 꿈을 움직일 수 없는 결심으로 몰아갔고, 그것의 첫 수업으로 말로만「낙원구 행복동」인 서울의 재개발 지구에서 신도 잘못을 저지름에 예외가 아닌「은강」으로, 그리고 끝내는 달에 가서 천문대의 일을 보겠다는 자신의 꿈과는 반대로 벽돌공장 굴뚝에서 떨어져 내린「난쟁이」의 다섯 식구 이야기를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원고지에 써보았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내 스스로조차 모르고 있었던 소설에 대한 내 잠재적 열망이 어느 날 『난장이…』과의 만남으로 어떤 구원과도 같은 자유에의 열망으로 나타났던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다. 나는 그 열망과 장차 있어야할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을『난장이…』에서 보았던 것이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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