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소가죽 구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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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비에 젖은 구두

뻑뻑하다 발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신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구두는 더 힘껏 가죽을 움츠린다

구두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린 적은 없다

구두주걱으로 구두의 아가리를 억지로 벌려

끝내 구두 안으로 발을 집어넣고야 만다

발이 주둥이를 틀어막자

구두는 벌어진 구두주걱 자국을 천천히 오므린다

제 안에 무엇이 들어왔는지 모르고

소가죽은 축축하고 차가운 발을 힘주어 감싼다


 인간의 몸을 각루자라고도 한다. 즉 오물이 쏟아져 나오는 포대다. 또 이 한 물건은 오묘해 알 길이 없으니 ‘이 뭐꼬’만 남는다. 구두에 발이 들어간다. 젖은 구두는 발을 거부하다 끝내 구두 주걱에 의해 발을 받아들인다. 이것이 인생이다. 던져진 존재. 다행히 젖은 구두는 힘껏 발을 감싸준다.

<고형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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