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앞서가는 노동정책(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인제 노동장관이 취임한 이후 노동부가 보여주는 노정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한마디로 현실변화의 속도를 앞지르고 있으며 기업측이나 다른 경제부처조차도 노동부가 사전협의 없이 혼자 앞장서는 것에 대해 불안한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장관이 보여주는 신선한 충격에 다소 놀라고 의아해 하지만 잘못된 노동부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노동행정은 앞으로 가위 혁명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 틀림없다.
지금 당장은 이 장관이 말하는 내용이나 행정지침의 개정방향이 원칙적으로 개혁무드와 맞기 때문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같으면 정면으로 조치의 부당성을 외쳤을 경영자단체나 대기업측도 묵묵히 사태만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노동부가 거의 매일 한건씩 새로운 행정지침이나 개혁조치를 발표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너무 인기위주로 행정이 흐르고 있지 않나 걱정하는 것이다. 즉 최근 전반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토론이 생략되는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주류라고 여겨지는 방향에 다소 이의를 제기하면 반개혁적이라고 치부되는 흑백논리식의 풍조에 대한 염려와 궤를 같이 한다.
노동정책이 다른 경제정책과 동떨어져 혼자 진행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신경제 전체의 차질없는 추진에도 도움이 안될 수 있다. 경제는 조화와 협조가 매우 중요하며 노정도 경제정책의 큰 테두리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최근의 경제정책과 노정이 제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신경제라는 큰 테두리내에서 현재 이 장관이 보여주는 신노동정책이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해 국민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 장관의 노동정책은 각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해 같이 동참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내가 맞는 얘기를 하는데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장해세력으로 여기는 풍토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무노동 무임금정책을 고쳐 무노동 일부유임금으로의 선회만 해도 그렇다. 무노동 무임금은 상당기간 정부의 확고한 정책이었고 심지어 노조도 원칙적 타당성을 받아들여온 것이다. 이제 대법원의 판례와 상이하다 해서 하루아침에 바꾼다 하니 기업이나 다른 경제부처도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정책방향의 옳고 그름만이 아닌 것이다. 노동부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설득시키려는 노력의 부족과 다른 정책과의 조화문제인 것이다.
이같은 논리적 모순은 결국 새로운 노정과 노동관계법이나 제도의 개정에 가급적 많은 사람의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형식으로 추진되면 해소될 수 없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어도 이 길만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유일한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