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희칼럼

부시·카르자이 회담에 올인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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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테러 집단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이 20년 이상 지켜 온 보편적인 원칙이다.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인질로 잡혀 있는 21명 한국 젊은이의 생사는 절박한 실존의 문제다. 한국과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은 이 보편적인 원칙과 엄혹한 실존의 난제 사이에서 2주째 갈등을 겪고 있다.

 이 갈등의 3각 동맹에서 한국이 먼저 이탈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보통의 한국인들에게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고 지극히 추상적·관념적으로만 들리는 보편적 원칙에 손발이 묶여 21명의 생때같은 젊은이들을 사지(死地)에 방치해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한국 정부 협상 대표들이 탈레반 측과의 협상의 무게중심을 간접에서 직접으로 옮긴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대한 탈레반의 불신은 심각한 수준이어서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중간에 끼고 하는 협상은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는 사이에 인질 2명이 살해됐다.

 탈레반 무장 세력과의 협상이 어려운 것은 그 지도부가 한편으로는 이슬람 원리주의로 단단히 무장돼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권위나 보편적인 가치관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도덕적 허무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생사가 종이 한 장의 차이도 안 되는 지옥도(地獄圖) 같은 환경에서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가는 그들에게 인도주의나 생명의 존엄성이나 국제 여론의 힘을 설파하는 것은 우이독경(牛耳讀經)일 뿐이다. 그들이 인질들을 석방한다면 그 이유는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거나 국제적인 여론의 압력에 눌려서가 아니라 인질 석방의 대가로 받는 탈레반 전사들의 석방 아니면 인질의 몸값일 것이다.

 인질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은 몸값을 치르고 인질들을 석방할 수도 있었을 납치 초기의 기회를 놓친 결과다. 그때 탈레반의 온건파들은 몸값을 받고 인질들을 석방할 의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강경파가 요구하는 탈레반 포로와 인질들의 맞교환이 대세로 굳어지고,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테러 집단과의 협상은 없다는 원칙을 공개적으로 강조하기에 이르러 한국은 속수무책의 절망적인 입장이 되고 말았다. 원칙에 유연성을 주고 예외를 만드는 협상은 조용히 물밑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불문율이 여기서 무너지고 말았다.

 특수부대를 동원한 인질 구출 작전의 주장과 외신의 오보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우리는 지금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좌절감과 절망에 빠졌다. 인질들의 살려 달라는 절규를 들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나오는 좌절감이요, 절망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지리적 조건, 인명을 경시하는 탈레반들의 사생결단의 각오, 그리고 인질들이 여러 곳에 분산 수용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인질 구출 작전은 성공보다는 실패 확률이 더 크다. 아직은 절망할 때도, 군사작전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할 때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길이 열려 있다. 하나는 탈레반과의 직접 접촉으로 협상 시한을 계속 연장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탈레반 포로는 우리 수중에 없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의 협력이 필요하다. 아프가니스탄을 설득할 카드가 우리에게는 없고 미국에는 있다. 그래서 우리 앞에 열려 있는 또 하나의 길은 5~6일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열리는 부시 미국 대통령과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다. 부시·카르자이 회담이 예정돼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정리하면 이렇다. 탈레반과 직접 접촉을 유지하면서 인질의 추가 희생을 막고,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모든 외교 역량을 쏟아 부어 부시와 카르자이의 마음을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부시 대통령에게는 “나는 카르자이에게 인질과 포로의 맞교환을 종용한 바 없다”는 오리발(Deniability)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미 외교는 조용히, 물밑에서 진행해야 한다. 국회 원내대표들의 떠들썩한 워싱턴 방문은 오히려 미국의 운신의 폭을 좁힐 위험이 있어 취소가 바람직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