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 실세수난 정조준이냐 우연일치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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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원조씨 겨냥엔 안 행장 오히려 “부적격” 우연설/비자금건 3명 압축… 관례넘는 수표추적 조준설
검찰사정은 미리 목표를 정한 것인가,아니면 수사과정에서 우연히 6공실세들이 걸려든 것인가.
최근 검찰의 동화은행·슬롯머신계수사에서 이원조·박철언·김종인의원 등과 이용만 전재무장관,엄삼탁병무청장 등 6공 실세들이 사법처리 대상으로 떠오르자 검찰수사가 처음부터 이들을 겨냥한 것 아니었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여권과 검찰은 『6공아래에서 오지랖 넓게 권한을 행사하고 다녔으니 당연히 걸려든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지만 우연의 일치로 넘기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선 검찰의 수사과정을 분석해볼때 동화은행·슬롯머신계 수사가 처음부터 특정인물을 노리고 시작됐다고는 보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동화은행 비자금조성 사건의 경우 결국 6공 금융계의 황제라는 이 의원의 출국까지 불러오긴 했지만 처음부터 동화은행에서 이 의원이 튀어나오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의원이 6공당시 시중은행 여러곳에 심어놓은 사람 가운데 안영모동화은행장은 「이원조맨」으로 분류돼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금융계에서는 자진 사퇴한 김준협신탁은행장이나 박기진제일은행장이 이 의원의 음덕을 얻은 대표적 인물들이고,오히려 이들을 「털어」본다면 6공실세들과의 연관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울지검의 슬롯머신수사도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나 애초부터 박철언의원과 엄삼탁병무청장을 노렸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슬롯머신업계 대부 정덕진씨는 여야 정치권·검찰·경찰 고위간부들과 광범한 교류를 가져왔고 평소 정씨의 배후로 지목된 정치인은 박 의원 외에도 수없이 많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슬롯머신수사가 시작될때 정치인들이 다칠 것으로 예상은 됐지만 정씨가 검찰에서 어떤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 「누가 과연 돌을 맞을지」가 결정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검찰수사가 「정치적 고려」를 완전히 배제한 「법대로의 수사」라는데는 역시 이견이 제기될수 있다.
동화은행 안 행장은 이·김 의원과 이 전장관 외에도 다른 고위층인사들의 이름을 4∼5명 더 거론했지만 검찰은 이 의원 등 3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건네받은 돈이 적어 관행으로 봐야 한다며 수사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검찰은 이 의원 등 소위 6공실세들에 대해서는 혐의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이들이 철저하게 세탁한 수표를 한달 가까이 찾아다녔다.
수사관행으로 볼때 그 정도로 철저히 세탁된 수표를 찾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어서 검찰이 이 의원 등 특정인물들에 대해 「보다 철저한 수사의지」를 갖고 있음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서울지검의 슬롯머신수사도 특정인에게만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수사의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 많다.
검찰은 당초 정씨를 현행하고도 딱 떨어지는 혐의사실을 찾아내지 못해 크게 당황해했었다.
이미 언론에 대서특필돼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는데 이를 충족시켜줄 만한 「대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박철언의원의 수뢰부분이 드러난 것은 정씨가 구속된지 1주일만이었고 이때부터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정씨와 협상(bargain)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한사코 입을 다문 정씨에게 「당신이 관련한 정치인·고위인사들이 한두명이 아닌것은 천하가 다 알고있는데 무조건 모른다고 하면 그게 통하겠느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전부는 아니다. 검찰과 국민들이 사법처리를 받아야 한다고 느끼는 인물에게 돈을 준 사실을 자백하면 당신에 대해 법적용이나 여죄추궁에서 선처하겠다」는 식의 회유를 했다는 추측이다.
수사초기 모습을 감췄던 정씨의 동생 덕일씨가 박 의원 소환을 앞두고 19일 밤 검찰에 자진출두한 사실이 협상부분에 대한 심증을 갖게한다고 보는 사람도 없지 않다.
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검찰수사 전체에 대해 속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문민시대의 검찰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정치적 고려보다는 법집행의 형평성을 기준삼아 대상을 가리지말고 드러난 모든 비리를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 국민 모두의 바람이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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