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분위기가 문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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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경제」는 우리나라 경제가 안고 있는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하는 개혁적 대응이면서 동시에 시장경제원리에 맞도록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중장기적 계획이다. 정부 당국자가 이 계획의 성과에 많은 기대를 건 나머지 현재 추진중인 여러 정책의 밝은 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또는 한쪽에 치우진 견해만을 내세운다면 신경제가 지향하는 본래의 목적에 도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김영삼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경제 1백일 계획중간 점검회의에서 관계부처 장관들의 보고를 받은후 『추진 실적만 나열하고 모든 것이 잘되고 있는 것처럼 돼있어 형식적이고 너무 안이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질책한 것은 이러한 우려를 적절하게 지적한 것이다.
경제는 밑바닥을 잘 다져나가지 않으면 잘 될 수 없다. 돈을 더 많이 풀거나 일부 가격을 동결한다 하더라도 반짝효과로 끝나고 만다. 우리나라 경제가 고압성장의 몸살을 앓고 있듯,또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데서 오는 선진국병에 시달리든 간에 이의 치유와 재도약엔 어느정도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정부 당국자나 국민이 성급하게 신경제정책을 다루거나 이에 과도한 기대를 보낼 경우 벼줄기를 손으로 뽑아올리는 우를 범하기 쉽다.
산업생산과 출하가 늘어나고 수출도 증가하는 등 일부 경제 지표는 그런대로 좋은 징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설비투자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고 물가는 마음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금리를 내려주고 각종 행정규제를 완화하는 조치가 강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투자마인드가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분위기가 문제인 것이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 없음을 알 필요가 있다.
정부가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물가는 올해 우리나라 성장의 걸림돌이 될지 모른다. 무역금융 지원 확대에 나섰던 한국은행이 인플레를 우려한 나머지 조심스럽게 돈줄을 죄면서 실세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섰다. 공급이 달리고 있는 일부 건축자재 값도 들먹이고 있다. 부분적으로 건축규제가 풀리면서 주택 및 상가 등의 증·개축이 늘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정부공사의 조기집행 일정도 재조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당국이 내건 경기활성화 정책이나 중소기업 구조개선,기술개발 촉진 등 7대 과제들은 산업현장에서 꽤 호응을 받는 분야도 적지 않다. 행정규제 완화 등에 대한 기대감이 제일 크다. 이러한 정책들이 시장경제에 맞게 뿌리내리려면 당국자들의 귀가 너무 엷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한쪽 이야기에 치우쳐 좋은 소리에만 빠져서도 안된다. 지금의 형편에 맞지 않게 너무 성급한 효과를 기대할수록 국민경제가 치러야할 대가가 크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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