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방송 디지털화 서두를 것 없다|최상호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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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우리 나라에서도 머지않아 위성 방송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에 앞서 위성 방송의 방식을 지금과 같은 애널로그로 할 것인지, 디지틀 방식을 새로 도입할 것인지를 놓고 정부 당국자는 고민 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 이 문제가 단순히 기술적인 방식을 정하는데 한정된 사안이 아니라 향후 전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므로 신문지상을 빌려 정보를 공유코자 한다.
기술 측면에서 디지틀 방식으로 기울어지는 듯한 분위기 아래 간과되고 있는 문제점 몇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디지틀 방식이 앞선 기술이긴 하나 주장자 대부분 혼돈하고 있거나 상업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성 방송의 제작·수신은 디지틀이 아닌 애널로그일 뿐만 아니라 변화에 의한 화질 저하가 우려되는데 마치 다가오는 차세대의 고품위 TV(종횡비 9:16)를 디지틀화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미국에서 15년 뒤엔 완전히 사라지도록 계획된 지금의 NTSC (종횡비 3:4) 방식을 구태여 거액을 들여 디지틀화 할 가치가 있겠는가. 1세대 무궁화 위성 수명이 끝나는 2005년보다 빠른 98년부터 현행 방식 대신 디지틀 HDTV를 보게 된다.
둘째, 아직 세계 어느 나라도 디지틀 위성 방송을 실시하는 곳이 없다. 국내의 기술 기준도 없고 송신기 개발도 안돼 있으며 실증 실험도 안된 상태에서 앞으로 2년 뒤에 방송할 수 있겠는가. 늦어지는 책임은 방송사로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설령 전자 사업 입국의 꿈을 가지고 디지틀 방송한다해도 실험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여져 결국은 국가적 낭비가 되는 것이다. 일본도 디지틀 추세를 간파했음에도 97년부터 10년간 운영될 BS-4위성의 송출 방식을 지금과 같은 애널로그로 이미 확정해놓은 상태다.
셋째, 방송은 기술 우선 정책 외에 문화적 수용 여건도 고려돼야 한다. 모든 미디어는 수요·공급이 밸런스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 방송만 볼 수밖에 없는 디지틀 수신기라면 얼마나 구입할 것인가.
차세대 디지틀 HDTV는 곧 등장한다. 그러함에도 10년 수명인 무궁화호 위성방송을 굳이 없어지는 NTSC 현방식을 디지틀화해야 하는지는 기술적 장점 외에 현실적 여건과 방송 환경 측면에서 검토돼야 한다고 본다.
일본이 10년 전에 이미 HDTV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음에도 세계적인 산업화가 안되었듯이 한국만이 채택한 30년이 넘은 NTSC를 디지틀화 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산업 파급 효과가 있을지 걱정이다.
따라서 당장의 위성방송을 기존 수신자를 보호하고 값싼 수신기를 많이 보급하는 선에서 인접국과 같은 애널로그로 위성시대에 진입하고 산업 전략은 곧 등장하는 디지틀 HDTV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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