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분담 아랑곳 않는 의원들/이상일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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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상이 달라지고 있어도 우리네 선량들만은 달라진게 없어 보인다. 염의(염치와 의리)는 여전히 없고 돈을 밝히는 버릇도 예전 그대로다.
국회가 12일 마련한 예산절약 계획안을 보면 한마디로 『내돈 서푼만 알고 남의돈 칠푼은 모르는』의원들의 행태가 잘 나타나 있다.
국회사무처는 당초 정부의 예산절약 방침에 맞춰 예산삭감 계획을 짰다.
이 계획에 따르면 국회사무처나 의원들의 절감대상 경비가 각 비목별로 똑같이 10∼20%씩 줄어드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말 잘하기로는 소진·장의 못지않은 의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국회도 개혁의 당위성을 숙지하고 있다. 근검절약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예산심의권은 국회에 있다. 따라서 정부방침에 의거해 입법부예산을 일률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국회의 어느 구석에 낭비요인이 있는지 우리가 더 잘 아니까 예산은 우리 스스로 깎겠다. 사무처는 의원들의 의견을 들어 예산절감안을 다시 짜라.』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명분아래 새로 짜여진 예산삭감안은 의원들의 이기주의만 반영한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우선 가장 절감해야할 의원들의 특별판공비·정보비등 경상비는 거의 줄지 않았다(당초보다 8억5천만원이 덜 깎인 3억8천만원만 삭감). 대신 사무처의 경상비는 정부 삭감기준에 맞춘 것보다 훨씬 많이 줄었다(당초보다 3억6천만원이 늘어난 11억4천만원). 경상비 속을 들여다 보면 더 가관이다. 의원들이 직접 챙기는 교섭단체지원 판공·정보비,국제회의 참석 판공비 및 여비,의원 외교활동지원비,예결위 해외시찰비,의원 용품비,의원사무실 운영비등은 단 한푼도 깎이지 않았다.
반면 본회의와 각상임위원회 음료대등 회의비,위원회 회의용품비등 의원들의 호주머니와 큰 상관이 없는 비목은 10∼20% 줄었다.
또 의원들 보고 공부하라고 짠 공청회회의비도 20%나 삭감됐다. 의원들은 입만 벙긋하면 국민과 이웃을 들먹이고 개혁을 부르짖는다. 고통도 분담정도가 아니라 혼자서 짊어질 것처럼 으스댄다. 그러나 국회예산 절감안은 이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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