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일 교포의 성공담|『나의 조선 나의 일본』전진직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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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 책은 1932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9세 때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뒤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 밀주부터 시작해 크게 사업적 성공을 거둔 한 재일 한국인의 「회고담」이다.
책방에서 관련서적을 뒤적이며 모든 걸 독학으로 습득한 그의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대졸초임이 5천엔쯤 됐던 시절 아직 야간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그를 어떤 유명 과자제조업체에서 월 3만엔으로 스카우트하겠다고 나설 정도였다고 한다.
『어느 틈에 한국요리 전문가가 되었다』는 그의 표현대로 그는 한번 결심한 일은 죽기를 작정하고 달려들었다.
과자제조로 기반을 닦은 그는 훗날 한국요리를 정식과목으로 채택한 「모란봉조리사학교」를 설립했으며 일찌감치 한국의 맛을 상품화하는데 성공해서 일본 전역에 공급해오고 있다.
4부로 구성된 내용은 자신이나 가족을 미화하거나 비하하는 일없이 있었던 일 그대로 표현하고있어 아주 읽기가 쉽다. 태어나서부터 부산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기까지를 다룬 1부에는 누렁이와 대포집과 아버지의 「작은 여자」가 등장하는데 일제라는 시대적 배경과 어우러져 꼭『토지』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2부는 10세도 되기전에 시작된 낯선 타국생활과 국민학교 시절을 그리고 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가족을 잃어버렸던 그는 『일본에서의 내 첫발은 제일 먼저 길을 잃고 헤매는 일부터 시작됐다. 돌이켜보면 지금도 여전치 집 잃은 아이 그대로인지도 모른다』고 쓰고있다.
3부는 중학시절로 일본의 패전과 함께 찾아온 민주주의와 『3백만 조선인은 한글을 배우고 마늘·고추를 듬뿍 넣은 음식을 떳떳하게 먹었다』는 표현처럼 재일 동포들의 민족교육과 교육기관 설립붐, 생활을 위한 밀주·엿·과자제조 과정 등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물론 민족의 고난인 6·25를 타국에서 대한 안타까운 심정도 적고있다.
4부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할아버지대부터 시작해서 집안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름을 짓는 일에서부터 가풍·결혼·성격·교육관등을 아주 솔직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성공한 자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추한 면을 감추려 하거나 과대 포장하려 애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체계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어서 중복부분이 종종 보이고 또 자신의 사상적 경사에 대한 뚜렷한 주장이나 설명이 없는게 다소 불만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평범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글임에 틀림없다. <평범사·2백65쪽·2천5백엔> 【박준영<북포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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