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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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또다시 금융비리가 터지고 사정이 강화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3공이래 몇번째 되풀이되는 악순환이다.
금융부조리는 한동안 속으로 곪다가 그 폐해가 너무 커지면 밖으로 비어져 나오고 그러면 여러 사정기관이 벌떼처럼 덤벼 비리를 파헤친다. 비리가 너무 엄청나 금융기관이 이토록 썩었구나 하고 새삼 통탄하고 더 엄한 규제조치를 마련한다. 그 서슬퍼렇던 유신시대이후 몇번이나 되풀이되는 패턴이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손대기 전인데도 금융비리가 너무 심해 모두들 놀라고 있다. 그 까다로운 규제·감독에도 불구하고 금융비리는 왜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비리가 생겨날 근본 요인을 남겨둔채 형식적 규제만 강화하기 때문에 실효가 없는 것이다.
금융부조리중 대표적인 것이 대출 부조리와 꺾기 강요다. 대출 부조리는 당국이나 은행스스로가 매우 엄히 다스리고 있고 그 때문에 감옥 가는 사람이 많아도 영 없어지지 않는다. 대출 부조리가 생겨나는 가장 큰 원인은 은행 금리가 시중 실세 금리보다 싼데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만성적 자금초과 수요상태에서 은행 금리와 시중 금리와의 격차를 그대로 둔채 대출 부조리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 연목구어일지 모른다. 은행대출의 꺾기 등도 같은 이유에서 생긴다. 대출 부조리를 줄이려면 금리의 가격 기능을 살리는 경제적 접근을 해야한다. 그런데도 금리 현실화는 뒷전에 밀린채 계속 사정 강화만 강조되고 있다.
또하나 금융 정상화가 안되는 요인은 금융계 인사가 잘못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인사를 공정히 해본다고 여러방안이 강구되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이번에도 행장추천위 같은 새 방안이 시도되고 있으나 결과는 낙관할 수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은행의 주인을 찾아주어 자율적으로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여건에서 당분간은 어려울 것이다.
차선의 방법으론 은행에서 자율적으로 인사를 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것이 처음엔 다소 말썽과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지만 몇번 해보면 룰과 관행이 생길 것이다. 지금 신한은이나 보람은·하나은행 같은 곳은 자율적으로 잘하고 있지 않은가.
은행 인사는 정부가 노파심에서 자꾸 간여함으로써 더 어질러 놓은 면도 있다. 정부가 간여하면 자연 정치권 등의 외압이 심해진다. 은행을 그냥 놔둘 수 없다는 생각에서 정부는 지난 30여년동안 관치금융을 해왔고 그것이 오늘날 금융산업 낙후의 소지를 만든 것이다.
따라서 은행인사를 포함해 은행일을 은행에 맡기는데서 금융 개혁을 시작하는 것이 정도다. 정부는 큰 테두리와 룰만 정하고 그것을 잘 지키나 체크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금융부조리 방지나 금융쇄신은 금리와 같은 가격기구와 자율 인사의 보장이라는 시스팀적 접근으로 풀어야 한다.
과거 몇번이나 실패한 방법을 버리고 근본을 찾아 고치는 것이 진정한 개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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