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하노버 콩쿠르 릴레이 입상 … 신아라·현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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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어려운 환경에서 바이올린을 시작해 국제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신아라(24·왼쪽)·현수(20) 자매. [사진=김성룡 기자]


지난해 10월 하노버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2위를 했던 신현수(20)씨는 부상으로 악기를 3년간 대여받았다. 신씨는 “독일에 직접 가서 가져와야 했는데 정해진 날짜보다 6개월 정도 늦게 받았어요”라고 속상한 듯 말했다. 비행기 삯 때문이었다. “악기를 받을 사람뿐 아니라 보증인까지 있어야 했는데 엄마까지 함께 갈 여비가 없었거든요.” 결국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스승 김남윤(58) 교수의 도움을 받아 악기를 가지고 올 수 있었다. 두 달 뒤 신씨는 그 바이올린으로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5위에 입상했다.

현수씨가 러시아에 가는 돈은 언니 아라(24)씨가 댔다. 차이콥스키보다 한달 먼저 열린 일본 센다이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하고 받은 상금이었다. 아라씨는 “저희는 콩쿠르에 가면 꼭 입상해야 해요. 그래야 그 상금으로 다음 콩쿠르에 나가거든요”라며 애써 웃었다. 아라씨는 김남윤 교수의 악기를 빌려서 쓰고 있다.

신씨 자매는 ‘신통 자매’로 통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차이콥스키·센다이는 물론 파가니니·티보바가·시벨리우스 콩쿠르 등 중요한 콩쿠르에서 계속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혼자 길렀다.

“남들은 음악을 하면서 힘들다고 하죠. 연습·레슨이 고되니까요. 하지만 저희 집에서 힘들다는 말은 차원이 달라요.”

아라씨는 “음악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힘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 자매가 1996년 처음 만난 김남윤 교수는 지금까지 무료로 레슨을 해주고 있다. 둘은 김 교수 얘기를 꺼내면
“엄마나 다름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 많은 선생님’과 ‘악바리 정신’=고향인 전북 전주에서 바이올린을 시작한 자매는 “숨쉬는 순간에는 늘 악기를 잡고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언니는 네 살이었을 때 연습 시간이 끝나도 커튼 뒤에 숨어서 ‘될 때까지’ 연습했던 악바리다. 동생도 하루 10시간씩 바이올린을 놓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왜 둘을 똑같이 바이올린을 시켰냐”며 묻기도 한다. ‘집안 사정이 좋은가 보다’라는 오해도 잦다.

현수씨는 “저희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새벽까지 일을 하셔야 했어요. 아이들을 혼자 두니 마음에 걸리셔서 뭐라도 배우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라고 기억했다. 두 자매는 동네 유치원에서 악기를 시작했다. 똑같은 악기를 해야 둘이 항상 같이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둘 다 바이올린을 쥐게 됐다. 언니가 입상한 국제 콩쿠르에서 다음해 동생이 또 상을 타는 식으로 ‘자매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유학가지 않고도 세계 정상”=자매는 각자 일년에 하나씩 국제 콩쿠르를 정복하는 중이다. 그들은 “콩쿠르가 끝나면 현지 매니지먼트에서 접근해 계약하자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유학 올 계획이 없다고 하면 거기서 얘기가 끝났어요”라고 말했다. 또 현수씨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줄 거에요”라고 다짐했다.

좋은 선생님과 노력만 있으면 유학 갈 필요가 없다는 그들이지만 그간 넘어 온 장애물도 많다. 아라씨는 “현수가 악기점에서 악기를 빌려 연주하고 나면 그 바이올린은 아주 비싼 값에 팔려요. 별로 비싼 악기도 아닌데 현수 연주를 보면 좋은 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라며 “그럴 때면 ‘아 이렇게 돈 많은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요”라고 털어놓았다. 현수씨는 “우리 꿈은 이런 걱정 없이 세계 무대를 누비는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김호정 기자<wisehj@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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