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공무원 이성구연구사의 자성|"뼈깎는 자정 아픔각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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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연초부터 잇따라 터진 입시부정 회오리로 걷잡을 수 없는 지탄의 대상이 된 교육공무원들은 요즘 하루하루의 생활이 「가시밭길」이다.
일부의 비리로 인해 마치 모두가 「범죄집단」인양 오해받는 세태를 탓할수만도 없다. 뼈를 깎는 반성과 비장한 각오 없인 결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22년째 교육부에 몸담고있는 교육연구장학관실 이성구연구사(50)가 작금의 참담한 심정과 비장한 각오를 담아 기고한 글을 소개한다.
『연일 꼬리를 물고 터지는 교육비리에 이젠 사고력마저 마비돼 생각의 방향조차 잡을 수 없다. 평소 잘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두렵다. 이제까지 내 자신 교육자라고 자처해온 때문이다.
학력고사 정답 유출이란 엄청난 사건은 40만명 교육자들의 양심을 무참히 짓밟았다. 비수를 꽂은 듯한 아픔과 고통은 차치하고라도 이제 우리 교육자가 설 땅조차 사라져 버렸다. 동료의 엄청난 죄악을 그저 그 한사람의 범죄라고 욕할수 있을까. 돌팔매라도 맞고 싶은 심정이다. 무슨 말을 할수 있겠는가. 학부모와 학생들 앞에 스승이랍시고 자리를 버텨나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사회 정의와 규범이 다 무너져도, 교육자들만은 꿋꿋하게 내일의 꿈과 희망을 심는 길을 걸어야 하건만 감히 얼굴 조차 들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를 탓할수도 없다.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하는 자정노력만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곪아터진 상처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초라함을 보여서는 안된다. 어떠한 변명도, 해명도 국민을 분노케 할 뿐이다. 대신 다시는 곪지 않겠다는 눈물겨운 각오를 다지자. 우리가 선택할 길은 지금 하나뿐이다.
투철한 사명감을 다시 추스려 존경받는 교육자로 거듭나기 위한 어떠한 아픔도 감내해야한다.
몇십년이 걸릴 시련일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삭발하는 심정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자.
결코 화려하지도, 생색나지도 않는 엄숙한 백년대계의 길을 묵묵히 걷고있는 대다수 동료들의 땅에 떨어진 명예를 회복해 나가자. 다시는 국민들에게 실망주지 말자. 우리의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이땅의 교육을 소중히 지켜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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