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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游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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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당(唐)대의 걸출한 시인 맹교(孟郊)에게는 늘 힘이 되어 주는 어머니가 있었다. 오랜 과거 응시에도 불구하고 낙방만 거듭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잔소리 한마디 없었다. 먹고사는 일이 걱정될 정도로 가난했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뜻을 살리기 위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46세에 맹교는 과거에 급제했다. 늦깎이에 출발한 그에게는 이렇다 할 관운(官運)도 따르지 않았다. 기껏해야 각 지방의 수장인 절도사의 부하 노릇에 만족해야 했다. 그가 벼슬자리 때문에 오래 헤어져 있던 어머니를 임지인 지금의 장쑤(江蘇)성에서 맞았을 때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중국 고시(古詩) 중에서 일반인에게 가장 널리 암송되는 어머니의 시 ‘유자음(游子吟)’을 지은 것은 그때다. 그리움이 차 오르는 감정을 그는 이렇게 읊는다.

 “자애로운 어머니 손에 들린 실/ 유랑하는 자식의 몸에 걸친 옷/ 떠날 때에 땀땀이 박아 주셨으니/ 천천히 돌아올까 두려우셨음이라/ 누가 말했나, 풀 한 치 마음이/ 봄 석 달 햇빛에 보답할 수 있겠느냐고(慈母手中線, 游子身上衣, 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 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중국시가선』·지영재 편역)

 평이한 시어가 마음을 울린다. 어머니 손에 들린 실이 아들의 옷에 땀땀이 매겨진다. 그 마음이 손끝에서 아들의 몸에 그대로 옮겨진다. 그 비유가 가장 멋진 곳은 다음이다. 한 치의 풀이 봄날을 가득 채우는 햇빛의 고마움을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밖을 떠도는 자식의 마음이 아무리 넓은들 그를 한없이 감싸는 부모 마음을 다 어림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크나큰 어머니의 사랑이 시인을 노래케 했다. 우리는 요즘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를 다시 보고 있다. 탈레반에 붙들린 23명의 자식을 지켜보는 한국의 부모들이다. 납치 8일째 넘어가는 즈음에 들려오는 소식은 아직 이들을 불안과 초조에 뒤척이게 한다. 수척해진 얼굴과 얼굴이 무척이나 안쓰럽다.

 납치자의 위해를 바라는 듯한 악플이 달린다고 한다. 이들의 선교 활동을 번역해 탈레반에게 보내 처형을 바라는 듯한 작태를 보이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한다. 지금은 무엇보다 그들 부모의 심정을 헤아릴 때다. 우리 모두에게도 이 젊은이들은 자식이나 다름없다. 이들의 생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지금 우리는 마음을 모아 반드시 살아 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꾸중과 훈계는 떠났던 자식이 문에 발을 들여놓은 다음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