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나이메겐의 장사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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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해뜨기 전에 시작해 오전 내내 도시에 물결을 이루는 걷기 인파 행렬을 보면서 입이 딱 벌어졌다. 17일 시작된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나이메겐의 걷기대회는 차원이 달랐다. 도시 전체의 들썩거림이 몸으로 전해져 왔다.

인구 15만의 소도시가 한꺼번에 몰려온 사람을 어떻게 수용할지 궁금해 곳곳을 둘러봤다. 오렌지.레드 존 등으로 나뉜 도시 구석구석에는 음식점과 카페가 시청의 임시허가를 얻어 수천 명씩 앉을 수 있는 야외 좌석을 마련해 놓았다. 카페에 들어가 손님이 얼마나 되냐고 묻자 지배인은 "대회가 열리는 나흘간 수입이 1년치의 절반"이라며 웃었다.

대회본부의 설명을 들어보니 허풍이 아니었다. 올해 나이메겐 걷기대회에는 63개국에서 4만2000명이 선수로 참가했다. 마라톤 중 규모가 제일 크다는 뉴욕마라톤 참가 선수(4만 명)보다도 많다. 인구는 뉴욕(900만 명)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흘 동안 참여 선수와 관광객을 합치면 2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운데 30%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이다.

걷기 외에 구경거리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걷기 행사는 나흘간 코스를 바꾸어 가며 11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가는데 이때마다 고유의 민속잔치가 열린다. 음악과 서커스, 연극 등 40여 개의 공연이 펼쳐진다. 내국인과 관광객이 뿌리고 가는 돈도 대단하다. 지난해 나이메겐의 음식점 등이 나흘간 거둔 순수입은 40억원이라고 한다.

기업들은 서로 이 대회의 스폰서를 하겠다고 난리다. 대회본부 관계자는 "매년 100여 개 기업이 스폰서 신청을 해 이 가운데 10개 정도를 추리느라 애먹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한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주선한 행사가 어떻게 치러졌는지 취재한 적이 있다. 민선 자치단체장들이 욕심을 내다 망신만 당하고 행사를 포기한 예가 한둘이 아니었다. 폼만 잡으려 한 탓이다. 거기에 비하면 100년 전 300명 규모로 마을 잔치를 시작한 나이메겐 대회는 지금 도시 전체를 먹여살리는 알짜배기 행사로 자리 잡았다. 겉만 그럴 듯한 행사는 이젠 그만 접자. 그리고 내 고향, 내 마을을 살찌울 수 있는 실속있는 행사를 벌이자. 그런 점에서 나이메겐 걷기대회를 우리나라 공무원에게 벤치마킹 대상으로 추천하고 싶다.

전진배 파리특파원 네덜란드 나이메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