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짜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박명숙
곤한 목숨 달빛에 겉어 날과 씨를 엮는다.
슬픔은 잉아로 오르고 기쁨은 바디로 앉아
서로가 만날수 없던
한낮의 틈에 북을 넣는다.
짧은 밤을 타래 감아 베틀로 올리고 나면
삐걱이는 용두머리의 꿈 버선발에 걸리고
불빛에 그림자 흔들리며
거친 삶이 타든다.
산도 물도 잠재우고 홀로 눈뜬 어둠속에
빈 가슴 당져내며 올성긴 세상을 짜노라면
사랑도 걸음걸음마다
말코에 감겨든다.
잔주름 여원 등피 돌아드는 꽃샘 바람
눈동자 영근 샛별이 뼈마디에 파고 들어
풀세운 무명빛 햇살
저만치서 눈 시리다.

<시작메모>
『철기신끈을 댕기면 잉아가 올라가는기라 그때 바디도 밀어올려놓고 씨북을넣… 어….』
고단한 초저녁을 입에 물고 어머니는 말끝을 맺지 못하신다. 산수유꽃 혼자피어서 깊고 쓸쓸한 하늘을 풀어내는데 젊음에도, 사랑에도, 건강까지도 한번도 써보지 못한 묵은 성냥을 꺼내 잠든 어머니가슴에 대고 그으면 새벽창을 사르며 바람속에 서계시던 아버지. 나는 숨어서 자꾸 길만 켜댄다. 성냥은 몇 개피나 남았을까. 마른 입 적시지 못하는 봄밤이 타고 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평생의 핏물밴 이승을 싱긋이 웃으며 이제는 대님을 풀 생각이 없으신 걸까. 어머니는 전에 없이 방문을 열어놓고 주무시는데 그 한여름 속으로 정말 비가와야지. 다 풀리지 않은 관절을 저미며 봄비가 와야지.
■약력
▲1956년 대구출신
▲1993년 중앙일보신춘문예 시조당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