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 대통령의 끊임없는 선거법 우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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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또 선거 개입 발언을 했다. 중앙선관위에 질의한 내용이라며 그 내용을 공개했다. 형식은 질의 내용 공개였지만, 사실상 선거 개입 발언이다. 질의서는 중앙선관위가 경고한 참평 포럼 강연(6월 2일)이나 원광대 특강(6월 8일)보다 더 나갔다. “이명박 전 서울 시장 측의 청와대 공작설 주장은 국민을 속이는 야비한 정치공작”이라는 식이다.

선관위는 이미 “공직선거법 제9조와 제254조, 헌재 결정, 대법원 판례 등을 참고하라”고 회신했다고 한다.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뜻을 충분히 전달한 셈이다. 그런데도 질의 내용을 공개한 것은 선관위야 뭐라 하건 하고 싶은 말은 하겠다는 오기와 독선이다. 더구나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선관위가 사전 판단을 거부한 것은) 대통령이 스스로 판단하고 발언하라는 것”이라며 "앞으로 소신껏 판단해 발언하겠다”고 했다. 정말 막가겠다는 선전포고에 다름 아니다.

‘질의 내용 공개’라는 방법은 치졸하다 못해 야비하다. 심한 욕설을 다 해 놓고 “이런 말을 하면 안됩니까”라고 묻는 것과 똑 같다. 대통령실에서 고작 이런 식의 꾀 아닌 꾀만 생각해 내고 있으니 한심하다 못해 역겹다. 질문서를 내기 직전인 지난달 21일에도 그는 김제에서 “‘공작이라고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부도덕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뭐 대통령 될 자격 없어’ 이런 식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말 하면)당장 난장판 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스스로는 말의 기교로 불법 시비를 헤쳐나갔다고 생각할 터이지만 대통령의 위상을 스스로 허무는 짓이다.

노 대통령은 개인 자격으로 선거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도 제기해 놨다. 계속 문제를 일으키며 선거법을 무력화하겠다는 속셈이다. 선관위는 대통령의 헌법소원을 각하하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보냈다고 한다. 청와대의 질의 내용 공개에 대해서도 선거법 위반 여부를 따지겠다고 한다. 선관위는 중심을 잡고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 관리가 어려워진다.